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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동심|어린이는 놀이터가 아쉽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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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월의 어린이들에게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없다. 한길엔 무서운 자동차가 질주하고 있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싶어도 선생님은 빨리 집에 돌아가란다. 그런가 하면 비좁은 집에선 오히려『밖에 나가 놀아라』고 짜증을 내는 부모들도 있다. 어린이들이 갈 곳은 놀이터뿐인데 그 놀이터가 모자란다. 어린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놀이터의 시설이 아쉬워진다.
시울 서대문구 연희동332 앞 철교는 연희동 꼬마들의 놀이터다. 민 동산을 파헤쳐 새운 「아파트」촌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없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온 개구쟁이들은 철교 주변에 모여 숨바꼭질을 하고 철교 밑 모래밭에서 뒹굴기도 한다. 연희「아파트」A-122호에 살던 김재일군(8·서울 추계국교 2년)은 지난 5월3일 하오 1시쯤 동네 꼬마들과 철교 위에서 놀다 수색행 제207호 동차에 부딪쳐 10㎝아래 모래밭에 떨어져 숨졌다. 같이 놀던 꼬마들은 가까스로 동차를 피했지만 소아마비로 왼쪽다리가 불편한 김군은 뒤뚱거리다 동차에 부딪치고 말았다.
서울 변두리를 지나는 철교 양쪽에는 판잣집이 들어서 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자촌에는 꼬마들이 뒤놀 빈터가 없다. 꼬마들은 놀 곳을 찾아 철길로 모여든다. 철길 위에 귀를 대고 멀리서 오는 기차 바퀴소리를 듣는다. 서울 금옥국민학교 2년 박윤덕군(8·성동구 옥수동 산1)은 철길 위에 엎드려 기차소리를 듣다가 달려든 기차바퀴에 깔려 숨졌다.
김군과 박군이 목숨을 잃었어도 연희철교는 여전히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고 기찻길에 모여드는 꼬마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23일 서울 영등포구 신광동188 홍용춘씨(63)는 늦게 본 3대독자 동철군(4)을 잃었다. 집 앞 골목길에서 세 발 자전거를 타며 놀던 홍군에게 고장난「트럭」이 뒷걸음질로 엎친 것. 놀이터가 없는 어린이들은 작년 한 햇 동안 1백24명이 길에서 놀다가 교통사고로 숨졌고 1천7백여명이 몸을 다쳤다.
매년 여름이 되면 뚝섬등 한강에서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6백여명. 실내「풀」이나 어린이 놀이터 안에「풀」이 있어도 아까운 어린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서울 청계천 판자촌 어린이의 놀이터는 청계천바닥. 냄새가 코를 찌르는 구정물을 첨벙거리며 모래 장난을 한다. 판자촌에서 한 뼘의 놀이터를 마련한다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
「유엔」어린이 권리선언은『어린이는…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하며 또 그러한 기회와 시설이 제공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모든 시설은 어린이의 취향에 맞도록 설치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어린이들. 서울사대 정원식 교수는『동작 기능과 지능발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공간적인 제 약속에서 자란 어린이는 정상적인 지능의 발달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놀 수 있는 기회와 시설을 마련해 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국의 어린이 놀이터는 2천50여개소. 서울 시내에서 어린이 공원용지로 표시된 곳이 79개소, 33만3천15평방m. 이 가운데 미끄럼틀, 그네, 모래밭,「시소」등 놀이 시설을 갖춘 곳은 12개소(3만3천3백26평방m)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적인 어린이공원은 주택가에서의 유치거리가 2백50m 내외, 각종 놀이시설과 음료수대, 변소 등을 갖추고 놀이 지도원과 간호원까지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국은 새로운 주택구획 지구에도 어린이 공원 하나 마련하지 않는다. 이미 도시 계획상 고시되어 있는 어린이 공원마저 예사로 해제, 불하하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
68년 이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용남어린이 공원과 영등포구 구로동 제 2어린이 공원등이 완전 폐지되어 택지로 변했고, 신당 제5 어린이공원과 영등포 제3어린이 공원등은 일부 해제가 되었다. 금호어린이 공원에는 3백50동의 판잣집이 들어섰고 신설 제1어린이 공원 용지에는 동사무소가 들어섰다.
신설 제5 어린이 공원 안에 짓고 있는 도서관은 공사를 중단하고 있다.「콘크리트」골조 공사장에는 동네 꼬마들이 몰려들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숭인국민교 1년 박완수군(7)은 공사장에서 놀다 물이 괸 웅덩이에 빠져 숨졌다.
교육위 당국은 놀이터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궁여지책으로 동네학교 운동장을 개방토록 했다. 그러나 학교측은『시실 물을 해친다』고 교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교통 공원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신호등 보는 법등을 가르치는가 하면 공휴일엔 일정시간이 지나면 주택가 안의 길에 차량 통행을 완전 차단, 어린이들이 뛰놀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어린이를 기르는 것은 긴 안목의 투자다. 놀이터가 없는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어 즐겁게 뛰놀면서 자랄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우리 사회와 부모들은 인색치 말아야 할 일이다.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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