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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당당한 납세자 되는 게 진정한 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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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덕환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은 유도 국가대표 시절이던 1972년 훈련 중 척추을 다쳐 전신이 마비됐다. 그의 의지와 달리 세상은 그에게 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단다.

“장애인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납세자’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생산적 복지가 자리 잡은 사회지요.”

 정덕환(67) 에덴복지재단 이사장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손가락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전신장애 속에서 평생에 걸쳐 일군 매출액 100억원 규모의 사회복지법인 아니던가. 고생에 이력이 난 그이기에 ‘악’에 받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반대였다. 에덴복지재단은 사회적 기업처럼 운영되고 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만드는 장애인 사업장 ‘에덴하우스’와 친환경 주방세제를 만드는 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 ‘형원’ 두 곳에서 장애인 130명과 비장애인 60여 명이 함께하는 활기찬 일터다.

 “스스로 땀 흘려 먹고 사는 우리 식구들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되지만, 모두 세금을 내며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로의 삶이 아닌 떳떳하게 일하고 세금 내고 당당한 국민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장애인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단,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일감을 나눠주는 등의 지원은 꼭 필요해요.”

 정 이사장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64년 최연소 유도 국가대표로 뽑힌, 촉망받는 선수였다. 72년. 선배와 훈련을 하던 도중 척추가 부러졌다. 목 아래론 아무 감각이 없었다. 병원에선 “3일 이상 살기 어렵다”고 했다. 1년 2개월 뒤 가까스로 퇴원할 수 있었지만 전신장애를 앓는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모교인 연세대를 찾아가 유도 코치를 해보겠다고 했지만 거절 당했다.

 “코치직을 거절 당했을 때 엄청나게 좌절했어요. 한 번만 기회를 주면 되는데…. 그 기회를 안 주는구나 싶었어요. 그때 학교에서 내려오면서 결심했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겠다. 그리고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주겠다’고요. 이 일도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겁니다.”

 정 이사장은 얼마 뒤 주민 동의를 얻어 79년 살고 있던 구로구 이화아파트 입구에 9.9㎡(3평)짜리 구멍가게를 열었다. 정 이사장이 손도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주민들이 거스름돈을 직접 가져 가야했지만, 가게는 그럭저럭 유지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83년엔 독산동에 3평짜리 방을 얻어 중증장애인 5명과 함께 전자부품 가공을 하는 ‘에덴복지원’을 열었다. 전직 유도 국가대표 선수가 휠체어에 의지해 일대를 누비던 얘기는 이 동네 전설처럼 남았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장애인 시설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주민들의 민원과 손가락질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정 이사장은 꿋꿋이 버텼다. 차량에 연탄재나 오물을 끼얹고 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를 느낄 때도 그는 참고 또 참았다고 했다.

 “건물주인 부도로 길거리에 나앉은 적도 있었어요. 서울시에서 땅만 구하면 건물을 지어주겠다고 해 제 돈 2000만원에 1억5000만원 대출받아 간신히 땅을 마렸했는데, 알고보니 건물을 못짓는 땅이었어요. 나무 판잣집 비슷하게 꾸며놓고 일을 했습니다.”

 ‘일(1)이 없으면(0) 삶(3)도 없다(0)’ 정 이사장이 요즘 밀고 있는 구호다.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장애인 직업재활의 날’(10월 30일)에 그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정 이사장은 이를 ‘착한소비 범국민운동’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장애인 생산품에 국민들이 더 관심을 가져 달라는 취지다. 정 이사장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들이 일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장애인 고용 사업장이 다른 업체와 온전히 경쟁해 버텨내기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KT&G에선 인쇄물 제작 일감을 주고 인쇄 노하우를 전수해주기로 했습니다. 회사 돈이 아니라 임직원들이 모은 돈 1억원으로 특수버스도 기증해주셨고요. 저도 열심히 뛰어야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장애인의 직업재활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파주=글·사진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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