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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의 시대공감] KBS 시청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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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31면

우리는 KBS 텔레비전을 보든 보지 않든 시청료를 내야 한다. 방송법에는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공영방송으로 KBS를 설립하고, 그 운영비를 수신료로 충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국이나 독일·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나 이웃 일본도 우리와 같은 공영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법에 근거해 텔레비전 수상기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는 한 달에 2500원씩 시청료를 낸다. 1년이면 3만원이니까 적은 돈이 아니지만 외국에 비하면 아주 싼 편이다. 1년에 프랑스에서는 131유로(18만3600원), 영국에서는 145.5파운드(24만9900원), 독일에서는 215.76유로(30만2400원), 일본에서는 1만5300엔(18만9000원)을 낸다. 우리보다 적게는 6배, 많게는 10배가 비싸다.

우리나라에서 수신료가 싼 것은 물가가 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물가는 다 올랐지만 KBS 시청료만큼은 32년째 꽁꽁 묶여 있어서 그렇다. 역대 정부가 시청료 인상을 추진했지만 여당일 때는 찬성하다가도 야당이 되면 반대해 1981년 이후 한 푼도 올리지 못했다.

시청자가 낸 KBS 시청료를 KBS 방송을 운영하는 데만 다 쓰는 것은 아니다. 국제방송이나 한민족방송, 사랑의소리 방송에 상당한 재원을 쏟아야 하고, 교육방송인 EBS의 송신을 대행하고 수신료도 지원한다. 재난방송도 주관한다. 난시청 해소를 위해 방송 인프라를 확충하고,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도 한다. 최근에는 디지털시대를 맞아 시설을 대대적으로 바꾸거나 보완했다.

이런 일련의 사업을 시청료로 감당할 수 없어 방송법은 공영방송인 KBS로 하여금 광고방송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KBS는 지난해의 경우 전체 예산 가운데 39.8%를 광고수입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광고수입으로 사업 예산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시대에 정보문화 네트워크의 중추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엄청난 규모의 차입이 불가피하다. 방송법이 규정한 KBS의 자본금이 3000억원인데, 앞으로 KBS는 방송 선진화를 위해 해마다 그 자본금의 두 배, 세 배에 해당하는 돈을 어디선가 끌어와야 할 형편이다.

그렇다고 광고수입을 대폭 확대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외국의 공영방송에 비해 광고수입 비중이 턱없이 높다.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는 광고방송을 하지 않는다. 독일의 공영방송인 ARD나 ZDF의 광고수입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FT도 광고수입이 14% 안팎이다. 앞으로 광고수입 비중을 낮추는 것이 KBS의 숙제라는 걸 알 수 있다.

정치권에서 여당이 되면 시청료를 올리자고 하다가 야당이 되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방송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어느 당이나 정권을 잡으면 방송을 장악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후진적인 정치문화 때문이다. 정치문화가 그러니까 KBS의 사장이나 간부가 되고자 하는 이는 정치권에 선을 대거나 눈치를 살핀다. KBS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정부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언론사가 많아 한자리를 노리고 대선 캠프에 들어가는 언론인이 많다. 공영방송을 운영하는 독일이나 프랑스·영국·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태다.

30년 넘게 묶여 있는 KBS 시청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첫째, 시청료를 현실화해야 한다. 시청료를 동결하는 것은 방송 선진화를 동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둘째, 공영체제가 제 모습을 갖추게 하려면 광고수입 비중을 대폭 낮춰야 한다. 공영방송이 시청률을 높여 더 많은 광고를 얻기 위해 막장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막장 개그다. 셋째, 방송이 공영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KBS를 여당방송, 관영방송으로 마냥 묶어둘 수는 없다. 특히 특정 정파에 치우치거나 대선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이 KBS 사장이나 다른 중책을 맡는 일은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시청료를 올리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제 야당은 시청료 인상에 통 크게 마음을 열어야 하고, 여당은 방송의 공영성을 보장할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야당의 주장을 대폭 수용해야 한다. 앞으로 여당이 야당이 되면 2013년에 공영성 보장 제도를 만든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야당이 여당이 되면 시청료 인상폭을 높인 것을 잘한 일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방송 선진화 없이 나라의 선진화가 없기에 이 문제는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고려대 신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전남대고려대 교수,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설 『담징』(201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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