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대책 무상 시리즈 이젠 거둬들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내년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관련 예산 860억원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그는 “무상급식이 좋다 나쁘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시할 돈 자체가 없어 못한다”고 말했다. 이 돈은 경기도 무상급식 전체 예산의 12%에 해당하나 지난 2년간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 전 학년 137만여 명에게 돌아가던 무상·친환경 급식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밥그릇 예산에 손을 대야 할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엔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우리는 그동안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정책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며, 재정이 바닥나면 무상보육·무상급식 등 무상복지는 결코 ‘공짜’가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무상급식이 경기도와 서울 등에서 시행되는 과정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는 부실한 학교 시설을 고치지 못하거나 교육에 꼭 필요한 교육기자재를 확보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급식의 질도 형편없이 떨어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복지공약은 지자체의 재정은 물론 시·도 교육재정을 갈수록 어렵게 만드는 부메랑이 됐다.

 이번 경기도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을 계기로 무상 시리즈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청와대·교육부·새누리당이 2017년 전국에서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공약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이 공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 교사 2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사 73.9%가 “시기상조”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의무교육기관인 초·중학교에서 매년 7만 명이 중도 탈락해 사회로 쏟아져 나오는 판국에 고교 무상교육이 시급하냐는 지적도 있었다.

 고교 무상교육엔 2017년까지 9조3000억원이나 소요된다고 한다. 박근혜정부의 교육복지 공약을 실현하는 데 드는 돈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무상급식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이 들어간다. 시·도 교육재정은 전보다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공약에 밀려 정작 학생들이 매일 체감하는 복지 수준은 형편없이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한정된 교육예산을 놓고 무엇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지 재정지원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상당수 기업이 직원 자녀의 고교 입학금과 수업료까지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 돈까지 떠맡아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게 시급한 일인가, 아니면 여름철이면 찜통, 겨울철이면 냉돌을 반복하는 열악한 교실 환경을 개선하는 게 우선인가.

 교육당국이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데 있어서 초점은 학생들이다. 무엇이 진정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자문한다면 고교 무상교육 공약은 중요하나 시급하진 않다. 이제라도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여기에 맞춰 당장 시급하지 않은 지출은 억제하고, 과감하게 뒤로 미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