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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반년의 좌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1일의 신민당 정무 회의는 여·야 협상을 포기하겠다는 결의를 채택했는데, 유 신민 당수는 이 결의에 따라 내주 중으로 새로운 당 지도 노선을 밝히게 되리라고 한다.
이 정세 변동에 대응하여 공화당은 앞으로도 총무 회담이나 양당 중진 회담을 통해 국회 정상화 협상을 시도하되 실패할 경우에는 추경 예산안과 기타 중요 법안을 심의키 위해 5월초에 임시 국회를 단독 소집할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신민당의 협상 포기는 동 당이 끝내 등원을 포기하고 원외 정당으로 전이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적당한 시기를 택해 국회에 출석하여, 원내외 투쟁을 병행 전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신민당의 협상 포기가 국회 운영을 공화당의 일당 독주로 맡기겠다는 것은 물론 아닌 줄 안다.
그렇지만 국회 정상화 원칙에 합의를 못보고 신민당이 등원하게 되면, 신민당이 취하려는 일연의 정치 공세와 이를 견제하려는 공화당의 봉쇄 전술로 말미암아, 국회 운영이 난관에 부딪치게 된 것은 명약관화한데, 그 위에 양당이 원외에서도 유세 대결을 하게 되면 정국은 숨가쁜 긴장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신민당의 협상 포기는 공화당이 야당의 이른바 「선행 조건 보장」 요구에 대해 성의 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가 때마침 태동 중에 있는 신당 운동이 신민당에 강한 자극을 주어, 당론을 강경의 방향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게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공화당과 신당 운동의 협공을 받은 신민당이 급기야 협상을 포기했다는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신민당이 일단 협상을 포기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등원하여 원내외 투쟁을 병행 전개할 방침을 새운 것을 보고 현명하고 용기 있는 결단이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선거 제도의 개혁 없이는 선거를 치르나마나, 국회에 들어가나마나 하다는 사고 방식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원내 교섭 단체를 갖고 있어 국민의 의사와 여론을 야당적 입장에서 집약하여 의회 정치에 반응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 장기간에 걸쳐 등원을 거부한다는 것은 원내 야당으로서의 사명을 스스로 포기하고 국민의 실망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공평한 국민의 눈으로 볼 때 신민당으로 하여금 국회 정상화 협상을 포기케 한 책임의 태반이 공화당에 있음을 부인치는 않을 것이다. 신민당이 내세웠던 『선행 5개 조건』이란 우리 나라 선거 제도와 민주 질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데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었고, 또 공화당으로서도 역시 그 점을 어느 정도까지 시인했기 때문에 협상을 개시하고 5개월 이상이나 대화를 지속한 것이라고 하면, 공화당으로서도 야당과의 협상에 있어 좀더 거당적인 성의를 보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 과정에 있어서 공화당이 매우 냉정한 자세를 취하고 또 협상 당사자가 지극히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그들이 신민당의 격앙된 감정을 냉각시키는데 필요한 시간만을 벌기 위하여 지금까지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다수당에 인내·관용·호양의 정신이 모자란다면, 벌써 그것만으로도, 의회 정치가 성립될 수 있는 정신적 풍토는 황막해지는 것인데, 대화 반년의 시일을 끌면서도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한 양당간의 대립은 설사 장소를 의회로 옮겨 놓는다 하더라도 무슨 안건이든 지간에 좀처럼 정치적인 타결을 보기가 어려울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국회를 반항구적으로 비정상 상태에 방임해둘 수는 없다. 공화당은 신민당이 독자적으로 등원하기 이전이건 이후이건, 또 공개적인 형식이건간에 협상 대화를 지속하여 명실공히 국회 정상화를 촉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내버려두어도 신민당은 등원할 터이니 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없다는 독선적인 태도는 대여당인 공화당의 명예를 위해서도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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