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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공항에서 본 런던의 하늘은 상상한대로 뽀얗게 보였다.
런던에서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까지 제트기로 8시간50분이라는 긴 항로, 그 중간 하늘 아래 북극이 내려다보인다고 한다.
북극이 가장 가까운 거리의 하늘아래 뜬 구름은 하얀 확대된 작약꽃같이 피어오르기도 하고 혹은 하얀 프랑스 캐비지 밭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게 또 어떤 때는 메밀 꽃밭처럼 보이기도하고 구름안개처럼 뭉개져버리기도 하고 북극의 구름은 다양하기도 했다. 북극의 빙산은 태양 빛을 받아 그림자가 생겨 내가 상상하는 월세계의 대낮같이 보였다.
그때에 북극통과기념증을 받고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식사시간이지만 대낮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었다. 지리한 대낮, 그러나 세월이 가지 않으니까 나이를 먹지 않는 북극의 상공이었다.
저 아래 정말 에스키모족이 살고 있는 것일까, 춥고 먹을 것도 없이 빙판에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 생각할수록 심란하기만 했다. 낮이 계속되는 백야를 날아 비행기는 앵커리지공항에 도착했다.
잠시 내리는 동안 여권과 주사증명서 조사가 있었다. 1년 전에 주사를 맞았으니까 무효나 마찬가지의 주사증이 뭐가 대단해서 꼭 조사해야 하는가하고 나는 모순을 느꼈다.
공항 내 매점에서는 면세품을 팔고있었다. 물개의 털가죽으로 만든 마스코트, 핸드백, 모자, 인형 등을 팔고 있었지만 별로 갖고싶지 않았다.
창 밖으로 눈 덮인 산과 무슨 나무인지 캐나다지방의 풍경에서 많이 본 듯한 나무숲이 보였다.
스페인의 황야보다 매력이 없는 넓은 대지 알래스카의 맛은 냉동기 속에서 오래 묵은 동태 맛처럼 싱거웠다. 인간이 살 곳은 북국이 아니고 역시 남국이라고 생각했다. <끝> [글·그림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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