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씨 "내 삶은 하나님이 연출한 한 편의 영화"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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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운명과 화해할 수밖에 없었다. '삶'을 다시 희망하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어둠의 끝자락에서 혼자만의 깊은 고뇌 속에 고통의 시간을 극복해야만 했다.

삶에 대한 의문과 갈등이 꼬리를 물었다. 어느 날 빛이 그녀를 다시금 비출 때 비로소 고백할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냉혹한 운명과의 화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감사였다.

'지선아 사랑해'의 작가 이지선(35)씨는 지나온 시간을 선물이란 단어로 그려낸다. 그녀는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55%(3도) 중화상을 입었다. 지난 2000년 이화여자대학교 재학 시절 오빠의 차로 귀가하던 중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 때문이다. 수년에 걸쳐 무려 3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낸 그녀는 역설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말한다.

모두가 살 가망이 없다고 했을 때 하늘은 그녀에게 새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말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아 절망 가운데 놓여있을 때도 그녀는 "하나님은 나를 향한 온전한 계획을 이뤄가고 계셨다"고 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회상이었다. 화상 입은 피부에 새 살이 돋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그녀가 걸어온 시간이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증거가 됐다는 점이다.

사고 후 그녀가 걸어온 시간이 궁금했다. 벌써 13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UCLA에서 사회복지학(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이씨를 지난달 29일 컬버시티 지역 한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은은한 커피향이 기분 좋게 흐르는 곳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 작고 아담한 키(155cm)에 그녀가 수줍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곱게 화장을 한 이씨는 30대임에도 불구하고 앳된 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 커피향이 예사롭지 않다.

"집 앞이라 종종 편하게 오는 곳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다. 책을 보며 공부하거나 생각하기 좋은 곳이다."

아쉽게도 자리가 없어 커피맛을 볼 순 없었다. 인근에 스타벅스가 있다기에 걸어가기로 했다.

-공부는 어떤가.

"너무 어렵다. 교수님들도 매번 찾아가서 못살게 해야 하는데…(웃음) 때론 달팽이 걸음으로 가는 것 같은 내가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 격려도 해주시는 것 같다."

-왜 사회복지학을 선택했나.

"사고 후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할 때의 상호작용과 그로 인해 기존의 인식과 편견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거다. 제도나 법보다는 먼저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

커피를 시킨 뒤 햇볕이 따뜻하게 비치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얼마 전 밀알 선교단이 주최한 '사랑의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참석한 이야기도 해줬다.

-본인도 어떤 편견을 느낄 때가 있나.

"왜 없겠나. (웃음) 어떤 분들은 저를 불쌍하게 보면서 '쯧쯧쯧' 하시기도 한다. 불행할 거라고 생각해서 동정하며 다가오기도 한다. 제 간증을 듣고나서 '일부러 기쁜 척 하는 거 아니냐', '24시간 그런 마음은 아닐 거다'라고 하시는 분도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완전하지 않나. 아마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변치 않는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 거다. 나의 삶은 하나님이 선물같이 주신 거다. 다만 내 삶이 조금 드라마틱해 보여서 부각돼 보이는 건 있겠다."

-이대 나온 여자라 그런가.(웃음)

"사고 전 '나'는 어쩌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그땐 참 이상하게 공허했다. (웃음) 한마디로 별로였다. 당시 교회서 열심히 활동도 했지만 실제의 '나'는 달랐다.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잘하고, 잘 살고 싶어하는 것도 있었다. 지금은 관심사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솔직히 그녀에게 사고 때의 기억을 묻는 것은 조심스러웠지만 이내 괜한 기우였단 것을 알게 됐다. 이씨는 과거 추억을 생각하듯 계속해서 미소를 지으며 답변을 이어갔다. 그녀는 과거의 시간에 대해 '소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바뀐 것 같나.

"이미 사고에 대한 건 소화가 다 된 상태다. 어떤 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웃음)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사고 전 '나'로 돌아가긴 싫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면 사고 전에 그 모습이 정말 나였나…싶다. 지금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내 모습, 내 삶이 좋다."

-수도 없이 간증을 했다. 지겹지 않나.

"(웃음) 한국에 잠시 나갈 땐 2~3달 안에 60여 번을 한적도 있다. 똑같은 말을 계속하니까 때론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어느 날 삭개오를 생각했다. 삭개오는 자신이 예수를 만난 일에 대해 100번을 말해도 주변에 계속 전해야 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다. 듣는 사람이 모두 다르고 상황도 다 다르기 때문에 내겐 사명과 같다."

그녀와 대화 중 갑자기 '힐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변화와 치유는 그녀가 가진 코드 같아서였다. 인터뷰 도중 대뜸 힐링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요즘 시대는 너무 아프다 보니 진통제를 원한다. 어쩌면 일시적인 측면의 힐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힐링의 의미가 궁금했다.

-힐링이 대세다.

"내가 사고 당했을 땐 '힐링'이란 단어가 화두도 안됐을 때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보며 '저 사람은 나의 아픔을 공감할 거야'라는 생각에 상담이나 만남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적 힐링은 관심이나 사랑 등을 통한 해결 방법을 말하겠지만 사실 모두에게 똑같은 방법이 적용되진 못한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르지 않나. 결국,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사랑'이다. 내가 아는 유일한 정답이라 그렇다."

-간단한 답 같으면서도 쉽지 않다.

"병원서 퇴원하고 새 얼굴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바닥까지 갔던 적이 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만의 아픔에 대해 하나님께 도대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따져 물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깊은 어둠의 터널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것은 아주 기본적인 진리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내게 계획이 있다'라는 약속이었다."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나.

"난 나만 힘들었던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간증하러 다니면서 느낀 게 정말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마라톤 하면서 배웠다. 포기하지 않는 게 너무 중요하다. 정말 죽을 것 같은 상황이 마라톤 때도 있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고 절망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결론은 그게 아니다. 비교에서 나오는 감사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각자의 삶을 주셨고 계획을 주셨는데 이걸 남과 비교하면 결국 비참해지거나 또는 교만해진다."

그녀는 두 차례에 걸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다. 장애인 자선 단체인 푸르메재단을 통해 지난 2009년 뉴욕 마라톤, 2010년 서울마라톤 등 두번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완주'에 대한 의미다. 그녀는 현재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나보다.

"절대 아니다. (웃음) 마라톤 대회 때는 정말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완주가 중요한 것 아니겠나. 거기다 어떤 길을 걷든 하나님과 함께 간다는 그 동행이 더 중요하다. 가끔 난 내 인생을 영화로 상상해본다. (웃음)"

영화 이야기를 꺼내길래 나중에 전화로 좋아하는 영화를 물었다. 그녀는 톰 행크스, 멕 라이언이 주연이었던 '유브 갓 메일(1998년)'을 꼽았다.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했다.

-인생이 왜 영화 같나.

"예전에는 내가 주인공, 감독, 시나리오 작성까지 다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인생은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다. 그래서 감동이다. 난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면 되는 주인공이다. (웃음)"

☞이지선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지선'을 검색하면 '작가'로 검색이 된다. 그녀는 작가란 호칭이 가장 듣기 좋다고 했다. 본인 이야기를 담은 '지선아 사랑해', '오늘도 행복합니다', '지선아 사랑해 다시 새롭게' 등은 30만 부 이상 넘게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유아교육)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사회복지학 석사), 보스턴대학(재활상담 석사)을 졸업한 뒤 현재 UCLA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 지선 씨는 지난 2010년 YWCA가 주는 젊은 여성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신선한 질문 원한 지선 씨의 털털한 답변

이지선씨와는 1:1 만남 외에도 전화, 카카오톡, 이메일 등을 통해 인터뷰는 계속됐다. 궁금했다. 이지선씨를 보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 주는 이지선 씨의 인생 이야기는 분명 특별함이 있다. 너무 특별해서일까. 사람들은 그녀에게 으레 하나님 이야기나 간증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만 던지기 일쑤다.
조금 진부했나보다. 지선 씨는 “가끔은 신선한 질문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거꾸로 평범한 질문들을 던져봤다. 그녀의 평소 모습은 어떨까. ‘털털함’ 그 자체다.

-본인의 장단점은.

“너무 느긋하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계획을 치밀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계획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 좋은 습관이 하나 있다. 심각한 걸 싫어한다. (웃음)”

-워낙 유명하니 뭔가 바쁠 것 같다.

“그런가. (웃음) 학업이 조금 벅차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요리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 특히 한식을 잘한다.”

-요리를 배웠나.

“요리프로그램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따라한다. 그외에도 TV를 자주 보는데 ‘무한도전’을 비롯한 예능 프로를 정말 좋아한다. (웃음)”

-이상형은.

“유재석 같은 사람이 좋다. 재미있고 잘 웃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 아직 없었나.

“글쎄….(웃음) 예전에 축구선수 이영표 오빠랑 밥을 먹은 적이 있다. 활발하지만 성격도 바르고 너무 멋있었다. 아! 지누션의 션 오빠도 너무 좋다! (웃음)”

-자신에게 신선한 질문을 한다면.

“음……생각해 본적은 없다. 나도 모르면서 남에게 요구한다니….(웃음)”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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