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볼트 … 번쩍하니 9초7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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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우사인 볼트(오른쪽)가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3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77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볼트는 맞바람과 폭우, 다리 통증이라는 3중고 속에서도 좋은 기록을 냈다. [모스크바=USA투데이 스포츠]

번쩍. 빗속에서 번개가 쳤다. ‘번개’ 우사인 볼트(27·자메이카)가 비바람을 뚫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로 다시 등극했다.

 볼트는 1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77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이 2009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세운 세계기록(9초58)보다 0.19초 늦었지만 2011 대구 세계선수권 100m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당한 아픔을 씻어내기엔 충분했다.

 출발선에 선 볼트는 우산을 펴는 시늉을 하며 여유를 부렸다. 출발 반응속도는 0.163초로 8명 중 공동 5위에 그쳤다. 중반 지점까지 저스틴 게이틀린(31·미국·9초85)과 나란히 달리던 볼트는 특유의 폭발적인 스퍼트로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영국 BBC스포츠는 “가장 눈부신 스포츠 스타인 볼트가 또 한번 확실한 승리를 따냈다. 좋지 않은 여건에서도 개인 8번째로 좋은 기록을 낸 것은 그의 뛰어남을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악천후를 감안하면 9초77의 기록은 나쁘지 않다. 볼트의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한 성봉주(50) 대한육상경기연맹 스포츠과학이사(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맞바람이 불었고, 비에 젖은 트랙이 미끄러웠다. 날씨가 맑고 트랙 컨디션이 좋았다면 볼트가 9초6대 기록을 충분히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m 결승전이 열릴 당시 경기장에는 초속 0.3m의 맞바람이 불었다. 초속 2m의 뒷바람이 불면 남자 선수는 0.1초, 여자 선수는 0.12초의 기록 단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초속 2m를 초과하는 뒷바람이 불면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볼트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9초6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 초속 1.5m의 뒷바람이 도왔다. 초속 0.3m의 맞바람이 분 이번 세계선수권과 비교하면 볼트는 초속 1.8m, 기록으로는 0.1초 가까이 손해를 본 셈이다. 이번 대회 기록을 깎아내릴 수 없는 이유다.

 비가 100m 기록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는 없다. 그러나 성 이사는 “트랙이 미끄럽고 빗줄기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볼트의 특별함은 여전했다. 게이틀린도 시즌 최고 기록을 낼 만큼 컨디션이 좋았지만 가속이 붙은 볼트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장신 선수는 보폭이 넓은 대신 보속(피치·한 걸음을 내딛는 데 걸리는 시간)이 느리게 마련이다. 볼트는 일반 선수들이 44걸음에 도달하는 100m를 41걸음에 주파할 만큼 보폭이 크지만 피치도 매우 빠르다.

 출발 반응속도가 계속 느려지고 경쟁자와의 격차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볼트는 세계 최강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특히 레이스 중반 이후 뿜어내는 스피드는 초인적이었다. 경기 후 볼트는 “준결승이 끝난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통증이 있었다. 세계기록 작성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그냥 1위만 하자고 생각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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