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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검사와 동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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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에서 식생활 개선을 위하여 분식과 혼식을 장려해 온지도 퍽 오래 되었다. 쌀과 밀가루 혹은 쌀과 다른 잡곡과의 영양대비표가 빈번히 발표되고 혼식을 장려하는 노래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쌀밥을 주식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상당히 뿌리가 깊게 박혀 있어서 정부의 권장책은 바람직한 성과를 엄지 못한 것 같다. 할 수 없었던지 정부에서는 강압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우선 관의 세력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음식점의「메뉴」에 손을 댄 것이다. 처음에는 잡곡을 섞지 않은 밥을 말지 못하게됐다. 그러더니 일주일에 이틀은 그나마 아주 없애버리고 밀가루 음식으로 바꾸도록 종용했다. 어기는 업소에는 당장 제재를 가하니까 음식점들은 비교적 이점을 잘 지키고 있다. 음식점 다음으로 관권을 식생활에 적용시킨 것이 초·중·고교의 도시락 검사다. 분단장을 시켜 날마다 도시락의 혼식여부를 조사하게 한다. 아이들은 위법정신이 강하다. 그리고 철저하다. 그들은 어물쩍 해서 적당히 넘기는 방법을 모른다. 학년이 낮을수록 그 철저도가 심각해져서 김밥에도 적용시키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오므라이스」같이 붉은 토마토 불이 밥 전체에 들어있는 경우에는 여럿이 모여서 판정을 내려서 아주 에누리 없이 잘 지켜가는 모양이다. 심지어『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하는 노래까지 생겨서 꽁보리밥만 좀 먹어 봤으면 좋겠다는 행복한 서울뜨기 아이까지 더러 생겨난다는 이야기니 정부의 도시락 검사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정부가 혼식을 장려하는 이유를 우리는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우리나라에는 쌀의 절대량이 부족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쌀 파동이 일어난다. 그걸 막으려면 쌀을 수입해 와야 한다. 차관이 산더미 같은 처지에 쌀까지 수입해 올 수 없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잡곡은 영양 면에서 쌀보다 못하지 않다. 그러니 되도록 잡곡을 먹어서 쌀의 부족을 메우고자하는 것이 정부의 항도일 것이다.
그러나 도시락 검사와 같은 방법으로 그 의도가 실현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식탁은 타인이 간섭할 수 없는 개인의 은밀한 장소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개성과 식성 뿐 아니라 가정형편과 재산정도까지 모조리 나타나 있다. 그래서 비밀을 좋아하는 나의 이 여학생들은 도시락을 남이 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도시락을 서로 보여 준다는 것은 그들의 친밀도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식탁을 아무에게나 보여 주지 않을 자유, 그것은 어쩌면 개인이 누리는 최저의 기본적인 자유일지도 모른다. 뿐 아니라 하던 짓도 멍석깔면 안 한다는 속담그대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강요당하면 싫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그래서 학교에만 안가면 혼식을 안하는 습성이라도 생긴다면 아이들에게 이동생활을 가르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
좀 시간이 더 걸리고 좀 성과가 나쁘더라도 국가의 시책이 옳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켜서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만드는 것이 참된 교육이 아니겠는가?
강인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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