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중국 거침없는 하이킥

중앙일보

입력

#1 중국 관방 라디오방송에서 사회자와 평론가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오갔다.

A: “요즘 해외에서 중국인 관광객 ‘추태’에 말이 많다. 공공장소에서 떠들기, 면세점에서 새치기 등 각종 비문명 행위로 태국 언론도 성토하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B: “우리 중국인들이 태국 관광업을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그런 말, 조금 섭섭(心酸)하다.”
A: “(당황한 목소리로)그래도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건 문제인 것 같다.”
B: “목소리가 큰 것은 우리 중국인의 민족 특성이다.”

방송 대담은 사회자의 의도대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중국의 거침없는 면모다. 중국인들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되는 걸 이미 ‘확보’해 놓았다고 믿는다. 외국 싱크탱크도 다 그렇게 예측하니 결코 주관적인 바람이 아니다. 그러면서 거침없는 중국을 대하는 다른 나라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2 제18차 중·미 인권대화가 중국에서 끝났다. 이런 대화가 있었는지 요즘엔 중국 학자들도 잘 모른다. 왜냐하면 중국을 공개적으로 자극하는 데 부담을 느낀 미국이 ‘로 프로파일’(low-profile)로 대화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인권대화’를 그나마 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 몇 나라뿐이다. 그런데 유럽 어느 나라의 외교관은 대중 인권대화에 갈수록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경제 회생을 위해 돈을 빌리는 처지에 인권을 설교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3 주중 미국대사를 한 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도 나갔던 존 헌스먼은 지난해 가을 중국 입국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다. 그는 중국 인권 문제를 자주 지적해 왔다. 모두 쉬쉬했지만 미국인들의 충격은 컸다. 그는 상하이에서 할 예정이던 공개 연설을 비공개로 바꾸는 조건으로 입국했다.

#4 뉴욕타임스 베이징 지국장으로 임명된 필립 팬은 베이징에 없다. 입국 비자가 벌써 1년 반이나 나오지 않아서다. 뉴욕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인 크리스 버클리도 비자가 안 나와 8개월째 홍콩에서 ‘대기’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사 8명도 비슷하다. 중국 지도부의 비리를 폭로한 기사를 쓴 대가라는 게 정설이다.

#5 미국 서부 대학의 언론학 교수가 베이징에 와서 강연했다. ‘미국에선 말로는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각 이익단체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취지로 중국 대학에서 한 시간 동안 강의했다. 대학생들은 열심히 노트했고 그를 초청한 대학 관계자들은 맨 앞줄에 앉아 강의를 경청했다. 그는 중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필자는 최근 중국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의 미국판 칼럼니스트 제의를 받았다. 상당히 매력적인 원고료를 조건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고민이다. ‘그럼 이제부터는 친중국 칼럼을 써야 하나’.

중국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반일 시위가 벌어져 일부 일본 기업이 철수했다. 그 즈음 한국 기업들은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일본 기업들이 떠난 자리를 한국 기업으로 대체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활용 가능한 지렛대다.

중국의 부상은 다른 나라에서 호감과 반감을 동시에 부르고 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는 참에 ‘이익관계의 함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리는 흥미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잘나가는 중국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지켜보면서.

써니 리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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