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밖 공방 치열한 '최태원 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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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53) SK그룹 회장 횡령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을 불과 9일 앞두고 핵심인물인 김원홍(52) 전 SK해운 고문이 대만에서 전격 체포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최 회장과 공범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최재원(50) 부회장이 김 전 고문 체포 당시 대만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검찰은 “SK 측의 개입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SK 측은 “이 사건을 가장 잘 아는 ‘키맨’을 2년 이상 잡지 못한 검찰이 더 의심스럽다”고 반박했다. 검찰과 SK가 최태원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앞두고 사건 핵심인 김원홍 전 고문의 체포 배경을 놓고 막판 ‘장외 공방’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8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지난 5~6일 SK사건 항소심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김 전 고문 체포 과정에 의혹이 있으며 김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도 증거구성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의견서와 함께 최 부회장의 출입국 기록도 첨부해 제출했다고 한다. 김 전 고문이 체포된 지난달 31일 최 부회장을 비롯한 SK 관계자들이 대만에 체류 중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검찰의 의견서 제출 배경엔 김 전 고문의 갑작스러운 체포가 SK 측의 의도에 의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불리하게 돌아가는 항소심 상황을 반전시킬 마지막 카드로 김 전 고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킨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동안 김 전 고문은 항소심 공판 내내 사건의 실체를 가장 잘 아는 핵심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2011년 3월 중국으로 출국한 이후 행적이 묘연했었다. 특히 항소심 막바지에 SK 측은 “최 회장이 김 전 고문에게 속아서 6000억원을 사기당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김 전 고문에 대해 증인신문을 새로 할 경우 기존 증거들로 입증해 놓은 최 회장의 혐의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김 전 고문이 최 회장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할 경우 항소심 재판 결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 측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SK 관계자는 “김 전 고문이 입국하더라도 검찰 영향력 아래에 있을 게 뻔하다”며 “특히 그가 최 회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준다는 보장이 없어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쩌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모험을 우리 측이 감행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원홍 전 고문을 빼놓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을 내려선 곤란하다는 게 SK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김 전 고문 체포 당일 최 부회장이 대만에 체류했다는 증거까지 제시하자 SK 측은 다소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SK 측은 일단 “최 부회장이 재판 과정에서도 몇 차례 대만에 가서 김 전 고문을 만났다고 진술한 만큼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최 부회장은 지난달 16일과 22일의 SK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최근까지도 한 달에 한두 차례씩 김 전 고문을 만났다”며 “재판 내용과 관련해 통화도 자주했다”고 밝혔다.

 SK 측은 이날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김 전 고문을 만나 귀국해 진실을 말하도록 설득한 것이지 체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SK 내부에선 “김 전 고문 체포와 송환에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검찰이 우연히 현지에서 그가 잡히자 괜한 음모설을 퍼트리고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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