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결혼(1)결혼하면 시형제들을 모두 남편으로 맞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토다]족은 인도의 남부고지대의 토착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지리적으로 타 종족들과 멀리격리 되었고 외부와의 문화적 접촉이 오랫동안 없었으므로 그들 나름의 독특한 사회풍속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산언덕은 넓은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어 많은 들소(버팔로)를 치는 목축이 생활의 주업을 이룬다.
이 사회에서는 일처다부제의 결혼풍속을 지녔다. 여자가 혼인하게 되면 한 남자의 아내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형제들을 동시에 남편으로 맞는다. 혼인후 출생한 꼬마 시동생이 있다면 또한 남편의 자격으로 갖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같은 항렬에 속하는 사촌·육촌의 시형제들까지도 남편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제 남편들은 한지붕 밑에서 별거할 수도 있다.
성생활을 위한 남편의 특전은 형제를 사이에서 비교적 균등하게 분배되어져 시기와 질투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이 별로 일어나지 않고 원만하게 처리되어진다는 것이다.
아내와 동침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두 남편에 의하여 독점되지 않고 골고루 허락하는 편이다.
만일 한 남편이 아내의 방을 먼저 점거하게 되면 그가 들어갈 때는 웃옷과 지팡이를 문밖에 걸어 둠으로써 뒤에 오는 사람이 알고 이들을 방해하지 못한다.
즉 사양하며 되돌아선다. 만일 남편들이 한집에 동거하지 않고 같은 부락이나 이웃 부락에서 따로 살면 여자가 한달씩 남편 집으로 들어가서 차례로 동거생활을 한다.
여자가 임신하게 되면 이 아이의 친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형제중에서 한사람이 만일 첫 아기라면 맏형이 아버지로서 자처하며 나선다.
아버지를 정하는데 따르는 공약의식이 이루어짐으로써 부친의 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임신 7개월이 되면 맏형은 임신한 아내를 데리고 친척들과 함께 숲속으로 간다. 거기에서 남편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친척들이 보는가운데 이것을 아내에게 바친다. 이로써 친적들은 그가 새로 태어날 어린아이의 아버지 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후로 맏 남편은 다음에 태어나는 둘째 또는 셋째 아기까지의 아버지가 절로 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딴 형제들중에서 또 한사람이 같은 의식을 행함으로써 그 밑으로 출생하는 자녀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여자 한사람을 아내로서 공유하는 여러 형제들사이에서 질투에서 오는 갈등이 없이 원만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그럴만한 사회제도적 이유가 있기 때문인 듯 하다. 과거 우리사회가 지녔던 축첩제도 또는 그와 비슷한 일부다처에서는 한 남편을 상대로 한 여자들 사이에서 무서운 갈등과 암투가 종종 있었으므로 이것을 여자들의 본능적 질투심으로 돌려 해석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토다] 남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남자들은 얼핏보아 질투가 본능적이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이것을 본능에 기인시켜 생각하기 보다는 그 사회가 남자들에게 성생활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는 사실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여자들에게 남편이외의 남자와의 생활을 엄금하였다. 한 남편만을 상대로 정절을 바처야 하며 외도란 생각할 수 없었다.
이것이 두세 여자들 사이에서 한 남편만을 상대로 살아가야 했을 경우에도 강요되었다. 따라서 질투의 본능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토다]남자들에게는 아내이외의 여자들과 기회가 허락되는 대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특권이 사회적으로 허락되었으므로 구태여 한 여자를 독점하려는 본능이 강하게 발휘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므로 [토다]족은 일처다부라고 하지만 때로는 형제들중에서 또 다른 여자를 구해줄 수 있다. 그러면 그는 그들의 공동아내로 다시 용납되는 것이다. 한 여자대신 두 여자와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형편이다.
즉 집단혼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풍습이외에도 혼인한 유부녀를 딴 남자가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이 있다. 그의 남편이나 남편들은 아내를 빌려주는 형식이 된다.
이것은 특히 재산이나 지위가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뜻에서 어린 유부녀에게 결혼한다. 그는 그 여자의 남편에게 소 몇마리를 신부 값으로 지불하고 데려가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서 그 지불하는 대가가 더 많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방법이 융통성 있게 동시에 실시된다.
여자가 귀한 사회에서 편의상 있을 수 있는 사회적 고안이다.
[토다]족들이 이렇게 일처자부의 결혼풍습을 갖게된 이유로서는 여자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들 사회에서 여아를 제물로 바치는 종교적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풍습은 20세기에 이르러서까지 실시되었으며 인도의 민주헌법이 개정되어 이들을 견제한 후 비로소 없어졌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