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돌아온 국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귀환자들에 대한 우리의 동정과 서운한 마음은 그지없다. 15일하오 기자회견에 나온 귀환자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순결과 조국애를 변호했다. 한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미귀환자들의 인간정신을 높이 찬양했다. TV중계는 그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하나의 인간 「드라머」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없지 않았다. 65일간의 억류기간동안 서로위로하며 옹호하던 이야기는 실로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비행기가 기수를 돌려 북행중인 그 경황에서도 『이 승객들을 어떻게 하나』 하고 발을 구른「스튜어디스」의 이야기도 훈훈한 감동을 준다.
정월 초하루, 납북자들은 모두들『가고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인지 통곡인지 모를, 그런 노래였을 것이다. 울적하고 통절했을 그들의 마음을 우리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TV를 보며 새삼 뼈에 사무치는 격절감에 젖었다. 같은 민족이 사는, 같은 반도의 한구석에서 이처럼 소외감, 위화감, 이질감, 그리고 적개심을 가져야하는 분단국의 비극. 귀환자들의 증언은 감히 그곳이 같은 민족의 입김이 서린 그런 곳이 아닌 것을 말해주었다.
매를 맞고 실어증에 걸려 멍청해있는 손호길씨의 표정은 눈물겨웠다. 어느날 밤, 그는 사라졌다가 2O일만엔가 돌아왔다. 그후로는 언어를 잃고 그처럼 얼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세뇌사회의 그 상황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비록 강박관념에서 아직 풀리기 전이긴 하지만 귀환자들은 「남조선」·「인민군」·「군관」 등 그쪽 용어의 마술에 잠겨있는 듯 보였다. 취재기자들은 그때마다 폭소를 자아냈다. 그「인공 인간술」엔 정신이 번쩍드는 것 같다. 세뇌술이란 중공이 중국대륙을 석권하면서 특히 개발시킨 이른바 「쭈싱까이짜오」(사상개조)의 하나이다. 「시나오」(세뇌=브레인·워싱)는 그래서 생긴 전후의 전율스러운 신조어이다.
그러나 미귀환자 중에 한사람인 황모 기자 같은 이는 끝내 이론대결에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한 무명시민의 그 반공정신에 경의를 표할만하다.
이제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KAL기 납북직후, 당국에 의해 주모자로 지목되었던 그 문제의 인물들에 대한 우리의 자책감-. 귀환자들은 범인을 제외한 누구도 서로를, 그리고 조국을 배반한 일이 없었음을 증언했다. 이 허무한 우리의 「드라머」를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우리는 조국의 이름으로 그들의 귀환에 합심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최상의 보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