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름다운 전설 시새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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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화필의 세계일주」 길에 오른 동양화가 천경자는 지난해 보내오 「타히티」와 「파리」 화신에 이어 「이탈리아」 화신을 또 본사에 보내왔다. 현재 「파리」에 머무르고 있는 천 여사는 연초 약 2주일간의 일정으로 낭만과 유서에 얽힌 「이탈리아」의 여러 고도 했다. <편집자 주>
「미라노」에서 급행열차로 2시간쯤 가면 조용한 고도 「베로나」에서 내리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의 무대였던 「베로나」는 지금도 「로미오」가 『그러나 연하게 저쪽 창문을 통해 비쳐 오는 빛은 무엇인가? 그쪽은 동쪽이다. 그리고 「줄리엣」은 태양이다. 그것은 나의 사랑. 오 그것은 나의 사랑』했던 「줄리엣」의 집 「발코니」가 그대로 남아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있다.
그곳에서 상당히 걸어가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이 있었다. 같이 겹쳐 묻혔던가 석관은 하나밖에 없었다. 무덤 앞, 뜰에는 물이 바싹 말라붙은 조그마한 우물이 있었다. 우물 안엔 여행자들이 던지고 간 은전과 동전이 무수히 깔려있었다.
슬픔은 동서양을 초월하는 것인지 동양적인 슬픔이 절인 「샤머니즘」 냄새가 자욱히 스며있고, 춘향이의 사당에 간 느낌이 들었다. 나도 「프랑스」 은전 몇 개를 던졌다.
그토록 사랑했던가…. 애정은 순간적인 것이다라고 요즘 사람이 말하는 새로운 애정「모럴」을 아프게 생각하면서 나는 뉘엿뉘엿 해 넘어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잿빛 「코발트」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떠 있었다. 인간 「암스트롱」이 디딘 발 흔적이 있는 저 달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전설을 비웃는 듯 시새운 듯한 생코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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