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사회공헌에도 판치는 ‘골목상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사회공헌에도 판치는 ‘골목상권’

삼성이 어린이집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사회공헌사업의 간판이었다. 삼성어린이집은 저렴한 보육료와 믿을 수 있는 식자재, 탄탄한 프로그램으로 보육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 역사는 1987년 이건희 회장의 서울 미아동 달동네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부부들이 모두 일하러 나간 사이 방치된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가난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우리라도 저 아이들을 보살펴줘야 한다”며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당시는 베이비붐 세대의 출산으로 한 해 63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2005년의 신생아는 43만 명). 반면에 어린이집은 3000여 곳에 불과했다.

 삼성어린이집은 89년 저소득층이 밀집한 서울 마천동에 처음 문을 연 뒤 빠르게 확산됐다. 서울 상계동·구로동과 지방에까지 30개 이상 지었다. 삼성은 매년 40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임신 중에 대기번호표를 받아야 입소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날 만큼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러나 2006년 부천을 마지막으로 삼성어린이집은 뚝 끊겼다. 삼성 임직원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은 계속 늘어나는데, 서민 자녀를 돌보는 어린이집은 더 이상 짓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내부 사정이다. 2007년 삼성 특검 사건이 터지고 이 회장의 경영 퇴진으로 어린이집 사업의 동력이 떨어졌다. 사회의 변화도 한몫했다. 삼성이 어린이집을 세운 저소득층 밀집 지역들은 상당수 고급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됐다. 애초의 ‘공헌’과 ‘봉사’라는 의미가 애매해진 것이다. 여기에다 91년 영·유아보육법이 만들어진 이후 어린이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동안 전국의 어린이집은 10배 이상 늘어나 4만2527개나 된다.

 하지만 삼성이 어린이집을 망설이는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영등포를 비롯해 삼성이 추가 대상지로 물색한 지역에서 심각한 반발에 부닥친 것이다. 물론 영·유아 부모들은 두 손 들고 환영했다. 문제는 민간 어린이집이다. 이들은 “삼성이 들어오면 우리가 망한다. 대기업이 어린이집에까지 손을 대느냐”며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골목상권’ 논리다. 인허가권을 쥔 지방자치단체장은 처음엔 양쪽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민영 어린이집들이 탄탄한 조직표로 굳어지자 도리가 없었다. 단체장들은 “어린이집은 지역친화형 사업”이라며 삼성에 손사래를 쳤다. 삼성도 “굳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며 사실상 어린이집 사업을 접었다.

 요즘 삼성이 열을 올리는 쪽은 해외의 사회공헌 사업이다. 제품의 74%를 외국에 내다 팔고 현지 공장도 늘어나니 당연한 흐름이다. 이미 해외 공헌사업은 다리를 놓거나 장학금을 주는 수준을 넘은 지 오래다. 하루가 다르게 깨알같이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베트남을 보자. 2년 전 부산에서 베트남 신부 살해사건이 일어나자 삼성은 현지에 ‘신부교실’을 세웠다. 비자가 나오는 2주 동안 예비신부들을 합숙시키며 한국의 문화·요리·예절을 가르친다. 삼성은 변변한 한-베트남 사전도 없는 불편한 현실에도 눈을 돌렸다. GS칼텍스와 손잡고 베트남 신부와 산업연수생들을 위해 2권짜리 핸드북을 발간했다.

 도처에 ‘을(乙)’이 판치는 세상이다. ‘골목상권’은 성역이 됐다. 어느덧 사회공헌 사업까지 해외로 내몰릴 판이 됐다. 이쯤에서 과연 누가 진짜 을인지 짚어볼 때가 됐다. 보육 분야에서 진정한 약자는 민영 어린이집이 아니라 영·유아를 기르는 부모다. 어린이집에서 “애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준다”고 맡기를 거부하면 꼼짝없이 일을 그만두거나, 양가 부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신세다. 당연히 하나라도 더 많은 삼성어린이집이 세워지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다. 적절한 경쟁이 이뤄지면 보육의 질도 올라갈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골목상권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표가 많은 쪽으로 잘못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비용 청구서는 누구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