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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의 예산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미국대통령은 2일 71회계연도 예산교서를 의회에 제출함으로써 71회계연도 중의 대내외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세입 2천21억「달러」세출 2천8억「달러」로 50년 이후 처음으로 13억「달러」의 흑자예산을 제출한 「닉슨」대통령은 『「인플레」심리를 제거하기 위한 주무기』로서 흑자 예산을 편성했음을 지적하고 「인플레」는 경기 후퇴 없이 수습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있다. 「닉슨」대통령은 69년의 물가상승률이 근래에 없이 높았음을 지적하고 이는 민주당 정부의 적자 재정 정책이 미친 주름살이며 흑자 예산으로 기필 수습되어야 하겠음을 강조했다.
재정의 흑자 집행이 경기 후퇴를 유발시키지 않으려면 흑자 재정에 상응하는 금융 정책이 고려되어야 할 것임을 「닉슨」은 지적함으로써 금융 완화를 시사하고 있는 것도 주목될 만한 것이라 하겠다. 「닉슨」대통령은 연방 준비 은행이 금융을 완화해야 한다고 분명히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재정이 긴축을 단행할 때 금융까지 긴축을 계속하면 경기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금융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금융의 완화를 희망하는 신중하고 분별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세출면에서 71회계연도 예산안은 커다란 변모를 보여 주고 있다.
국방비를 58억「달러」나 전년보다 감축시켰고 우주개발비 원자력 위원회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수질오염방지, 범죄퇴치, 빈자를 위한 식량지원, 도시 대중교통수단의 개선, 인력 훈련 확장 등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확대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국방비는 총 예산의 37%로 전년의 44%보다 7%가 떨어진 반면 인간 자원개발을 위한 지출 비율은 전년의 34%에서 41%로 늘어나게 된 것이며 고유한 사회보장비 지출만도 18%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출 구조의 변화는 세계의 경찰이란 대국의 구실에서 탈피하는 과정을 「닉슨」이 구체화하고 있음을 예산면에서 반영시키고 있는 것을 뜻하며 결국 미국도 구주의 복지국가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서구 제국의 사회복지 예산비율은 31%∼35%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북구의 일부에서는 그것이 50%수준에 가까운 실정임을 볼 때 미국의 복지비용 18%는 복지 정책면에서 미국이 상당히 낙후하고 있음을 뜻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 미국 사회의 병적인 범죄 증가와 폭동·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의 경찰 구실을 지키려 했기 때문에 복지 정책 내지 국내 정책을 등한시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국제 정치 중심의 미국 정책은 동서 긴장의 완화와 세계 정치의 다원화 그리고 국내적 모순의 누적이라는 제요인으로 말미암아 시정되지 않을 수 없는 정세 속에 빠져 결국 「닉슨」대통령은 내치 중심의 정책 체제를 짜내게 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할 것이다.
미국이 내치 중심의 정치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이 파생시키는 외교상의 문제점은 이미 「베트남」철군, 「아시아」의 비미국화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었으며 그 여파에 대한 대비책도 우리로서는 신중히 마련해가야 할 줄로 안다. 또 「인플레」수습을 위해 흑자 재정을 택하는 신중성, 그리고 금융에 대해 직접 개입하지 않고서 재정 정책과 조화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금융의 중립성 존중에 대해서도, 우리 당국자들은 배우는바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 자원을 존중하지 않고 사회복지정책을 등한시 할 때 야기되는 범죄 증가·폭동·혼란과 국론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닉슨」의 예산교서가 시사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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