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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야는 국정원 국정조사의 본질에 충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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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한 채 국민의 불쾌지수만 자꾸 높이고 있다. 뭔가 새롭게 진전되는 것이라곤 매일 수위를 높이며 튀어나오는 신형 ‘막말폭탄’ 정도 아닌가. 게다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휴가철을 건너뛰어 8월 5일에서야 국정원 기관보고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국정조사에 대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나 다름없다. 기관보고, 청문회, 결과 보고서 채택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45일의 국정조사 기간 중 실제 일하는 날은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셈이다.

 ‘도대체 이런 국정조사를 왜 하느냐’는 개탄과 ‘애초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국정조사에 대한 여야의 의지를 모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을 통해 과연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는지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정보기관의 전문성을 높이고 정치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국정원 개혁이다. 수사기관도 아닌 국회에 진상규명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입법권을 바탕으로 한 국정원 개혁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런 현실을 감안해 우리는 이번 국정조사의 초점을 국정원 개혁에 맞추라고 촉구했다. 그 기본 방향은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역량 강화와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정조사는 어떻게 진행돼 왔나. 새누리당은 가능한 한 상처를 덜 입고 이 국면을 모면하는 데에, 민주당은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에 어떻게 하면 많은 타격을 입히느냐에 각각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누구를 증인으로 부르느냐 마느냐, 무엇을 공개하느냐 마느냐 등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또 국회의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질 미달의 막말들을 내뱉으며 본질과는 무관한 갈등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지엽적인 싸움이 전체 국정조사의 정상적인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게 국민들 앞에서 무슨 꼴불견인가.

 현재로선 여야 모두 이번 국정조사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만한 동력은 이미 잃은 듯하다. 의욕적이던 민주당조차 수세적인 새누리당의 전술을 뻔히 알면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당내 계파끼리 집안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민주당의 이런 무기력함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 실종 사건 이후 더 두드러진다.

 이쯤 되면 여당은 물론 야당마저 지루한 교착상태에 은근히 안주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계산된 듯한 소모전을 벌이며 난처한 시간을 흘려 보내는 건 피차일반 아닌가 말이다. 고단수 정치쇼가 펼쳐지는 ‘스턴트 국정조사’에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다면 국민적 불신을 자초할 뿐이다.

 이번 국정조사는 자칫 진상 규명이나 국정원 개혁 근처엔 가 보지도 못한 채 외곽만 때리다 끝날 판이다. 서양 속담에 마지막에 웃는 자가 제일 크게 웃는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국정원이 마지막에 웃을지도 모른다. 여야는 국정원 개혁의 기초라도 닦겠다는 자세로 남은 일정을 충실히 소화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