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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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기고교장이 파면됐다. 그것도 「인권의 날」에.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단단히 욕을 불만했지만, 그것이 파면까지 갈 줄이야, 본인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 유명한 일벌백계의 보기라면, 너무한 군데 사람만 서리를 맞는 듯한 인상이다. 그리고 그 서리가 너무 자주 내렸다. 이번에 물러 나게된 교장이 화동으로 옮겨 간 것은 겨우 두달 남짓, 그 전교장은 또 얼마나 있었을까.
경기중·고교를 영국의 「이튼」교에 견주어서 화사한 꿈을 그리던 교장도 있었지만. 「이튼」과 경기가 흡사한 점은 전자현미경을 가지고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튼」은 개교이래 근 30명의 내각수상을 내어. 전통적으로 지배계급의 아성구실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튼」은 요란스런 학교이다.
그러나 경기는 이 근년에 와서 「무우즘」이니 「창칼」이니, 이번의 1천만원 부정편입이니 하는 식의, 파동의 연속으로 요란스러워졌다. 「이튼」교장직은 교육감이니 문교장관도가 좌우할 수 없고, 내각수상도 함부로 다칠 수 없는 고귀한 자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교장의 처지는, 파동이 일 때마마 보따리를 싸야하고 서리가 되다보면 숫제 교직에서 쫓겨 나는 비극을 맛보아야 한다. 「이튼」은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학생의 입학을 가지고 국외자가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선 사립이고 공립이고 교장 마음대로 학생을 뽑고 안뽑고 하는 법이 없다. 거기에다 경기는 공립중의 공립학교이니 더할 말이 없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이튼」과 경기가 비슷한 점이 꼭 한가지 있다. 자식을 가진 사람은 대개 그 학교에 자제를 보내고 있어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의식적인 예외이다. 다만 학교에 넣고 난 마음이 다르다.
「이튼」의 경우에는 일반국민은 물론 학부형들도 교장이나 학교의 내막이나, 학교서 하는 교육에 대해서는 학교에 깨끗이 일임하고 만다. 그러나 우리 경기가 해야하는 시집살이는 너무도 고되다. 학부형의 극성이 있고, 동창회가 있고, 국민의 여론이 있고, 문교당국이 있고, 국회가 있다. 그래서 파동이 잇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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