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자성론' 커지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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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6·25전쟁 정전 60주년 행사에 헌화하러 가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조 합참의장,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 오바마 대통령, 샐리 주얼 미 내무장관,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박근혜 대통령 특사). [워싱턴 로이터=뉴스1]

미국과 중국은 6·25전쟁에서 남북 당사자를 빼면 가장 주요한 참전국이다. 각각 연인원 178만9000명(미국)과 230만 명(중국)이 한반도를 밟았다. 그중 3만6940명과 13만5600명이 이 땅에서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정전 60주년을 맞은 27일 양국의 표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우선 미국의 6·25전쟁 정전기념일은 축제의 날이었다. 이날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식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6·25전쟁은 무승부가 아닌 한국의 승리였다”고 선언했다. “오늘날 5000만 명의 한국인이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는 이 전쟁이 승리였음을 웅변한다”며 “억압과 빈곤에 허덕이는 북한과 비교할 때 6·25전쟁은 소중한 승리이자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걸친 우리(한·미) 동맹은 지난 60년간 한국에서 확인된 것처럼 평화와 안보, 번영을 위한 세력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함께 참석한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도 “같이 갑시다”고 외쳐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중국의 분위기는 결코 밝지 못하다. 오히려 6·25 참전과 북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의 6·25 참전을 놓고 인터넷 포털 텅쉰(騰迅)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3%인 4만682명이 “참전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답했다. 참전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67%(8만4371명)로 더 많았지만 공산당의 선전대로 여론이 형성되는 중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33%는 높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라서인지 텅쉰은 하루 만인 28일 여론조사 사이트를 닫아버렸다.

 지난 60년간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다)’로 규정해 왔다. 참전했다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안장된 평남 회창군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릉은 일종의 성지였다. 그만큼 의미 있는 참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참전했기에 아직 북한이 (미국으로부터)압록강을 지키고 있고 그 덕에 우리는 경제발전을 이뤘다”(大自然No100)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참전에 대한 회의적 견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소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것에 불과하다”(我v能e)는 시각까지 등장할 정도다. 이런 의견은 참전 병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장쩌스(張澤石·84) 중국작가협회 회원은 28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 당시 미군이 중국을 침범할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훗날 알고 참전한 것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이제 최소한 누구를 위해 그 전쟁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며 모든 인류는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한국전쟁에서)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 1948년 공산당에 가입하기 위해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淸華)대 물리학과를 자퇴했으며 이후 “미군이 중국을 침략한다”는 공산당 선전 이후 참전했다. 화리밍(華黎明) 전 네덜란드 주재 중국 대사 역시 26일자 차이나데일리 기고문에서 “정전 60주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북한의 독립과 주권에 관한 우려를 동정하고 지지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남북이 평화 통일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항미원조’라는 전쟁 개념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24일 중국 외교부 성명에 이어 중국 언론들은 27, 28일 정전 60주년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항미원조’ 대신 ‘조선전쟁’이라는 표현을 일제히 사용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 관계가 혈맹이나 특수 관계가 아니라 정상적 국가관계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전승절(정전기념일) 기념행사차 북한을 방문한 리위안차오(李源潮) 부주석이 27일 “정전을 기념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한 것도 중국이 6·25 당시처럼 무조건 북한을 지원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워싱턴=최형규·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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