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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떼쓰면 ‘부엉이 눈’ 뜨고 나지막히 “아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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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08면

프랑스식 육아법을 실천하는 김은혜·김경태 부부가 집 마당에서 30개월 된 딸 민정이가 토마토를 따는 걸 지켜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30개월 된 딸을 키우는 임신 8개월인 직장인 김은혜(33)씨. 얼마 전까지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가슴 통증도 있었다. 밤 11시면 잠들던 딸이 새벽 1시까지 태블릿PC로 만화 동영상을 보는 습관이 생긴 탓이다.

요즘 프랑스식 육아법 뜬다는데 …

 딸이 “조금만 더”라고 조르기에 허락해 준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엄마가 자고 싶다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막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란 생각에 “안 돼”란 말을 못한 채 냉가슴만 앓다 병까지 얻게 됐다.

 답답한 마음에 김씨는 서점을 찾아 육아서적을 뒤졌다. 『프랑스 아이처럼(원제 Bring Up Bebe)』(북하이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엄격히 교육하고 절제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게 핵심이었다. 실행에 옮겨 봤다.

 아이가 동영상을 보겠다고 보채자 “자야 할 시간이야”라며 단호하게 막았다. 프랑스 부모들이 한다는 방식대로 목소리는 낮추고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그래도 “안 돼”란 말을 반복했다. 이렇게 프랑스식 육아법을 실천한 지 2주 만에 아이가 손을 들었다. 투정을 그치고 밤 11시에 잠들기 시작했다. 김씨는 “내겐 작은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1 서울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프랑스인 요리스 디역스는 레스토랑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키도록 엄격히 교육한다. 왼쪽부터 레오폴드(6)·맥상스(8)·엘로이즈(10). [사진 요리스 디역스] 2 최영선씨의 프랑스인 남편 장 뤽 보스(왼쪽)가 딸 이리스(4)를 돌보는 모습. 프랑스식 육아에선 아빠 역할도 중요하다. [사진 최영선]

 “예전엔 모든 걸 아이 중심으로 끌려다녔다. 부모인 우리가 지치면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걸 프랑스식 육아법이 뒤집었다. 비결은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프랑스인들의 철학이더라.” 김씨는 이르면 다음 달 태어날 둘째 아이도 같은 방식으로 키울 작정이다.

  『프랑스 아이처럼』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인 미국인 여성 파멜라 드러커맨이 프랑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쓴 육아기다. 레스토랑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는 프랑스 아이들과 엄마의 행복을 위해 모유보다는 분유를 권하는 프랑스 산부인과 의사, 하이힐을 신고 아이와 우아하게 걷는 프랑스 엄마들을 보며 그들의 육아법을 분석했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뒤 아마존에서 50주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며 프랑스식 육아법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엔 지난 3월 출간돼 육아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어 미국인 육아전문가 캐서린 크로퍼드가 쓴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아름다운 사람들)가 지난달에 나왔고 프랑스인 아동심리학자 스테판 발렌틴이 쓴 『혼자 노는 아이 함께 노는 아이』(한국경제신문)도 지난주 출간됐다. ‘맘스홀릭’ 같은 인터넷 육아 사이트에서도 “프랑스식 육아법으로 효과를 봤다”는 글이 많이 올라 있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타이거 마더(tiger mother)’와 아이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북유럽식 육아법에 이어 프랑스식 육아법이 국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부모는 ‘육아 총사령관’ 돼야
프랑스식 육아법의 뿌리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의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원하는 걸 언제든 들어주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란 것이다. 21세기 프랑스에서도 이 말은 통한다. “아이를 왕처럼 키우시네요”라는 말은 프랑스 부모들에겐 모욕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프랑스에선 제멋대로 자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아이를 ‘앙팡 루아(enfant roi·왕 아이)’라고 부른다. 크로퍼드는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에서 프랑스 부모를 ‘육아 총사령관’이라고 정의했다. 엄격한 권위를 갖고 아이를 교육한다는 뜻이다.

  『혼자 노는 아이 함께 노는 아이』를 쓴 발렌틴 박사는 중앙SUNDAY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프랑스식 육아법은 일정한 ‘캬드르(cadre·틀)’를 정해 주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엄격하게 훈육하되 틀 안에선 자율성을 키워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탕(Attend·기다려)’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프랑스 육아법이 가장 중시하는 건 아이들이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프랑스계 은행 BNP파리바 한국대표 요리스 디역스(44)는 “아이들이 부모의 삶을 지배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엄마·아빠도 하고 싶은 게 있다. 너희는 주말에 놀이공원에 가고 싶겠지만 아빠는 전시회를 보러 가야 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디역스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장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 “뛰거나 소란스럽게 굴면 안 되고 얌전히 행동하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프랑스 부모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드러커맨은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프랑스인이 아이에게 주의를 줄 땐 ‘부엉이 눈’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주의사항을 어길 경우 디역스는 10분간 구석에 세워 두는 벌을 준다고 한다. 프랑스 남성과 결혼해 파리에서 4세 딸 이리스를 키우고 있는 최영선(45)씨 부부는 ‘삼진아웃제’를 시행한다. 딸이 반찬 투정을 하면 눈을 들여다보며 “첫 번째 경고야”라고 주의를 준다. 두 번째 경고를 준 뒤에도 딸이 투정을 그치지 않으면 방에 혼자 있게 하는 벌을 내린다. 최씨는 “서울에서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갔는데, 그네 탈 차례를 아무리 기다려도 앞의 아이가 계속 타더라”며 “프랑스였다면 그 아이 엄마가 달려와 아이를 혼냈을 텐데 여기선 오히려 ‘아기라서 그렇지’라며 가만히 놔두더라”고 말했다.

 프랑스식 육아법에선 아버지 역할이 중요하다. 최씨는 “육아 부담을 대개 엄마들이 지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아빠의 육아를 중시한다. 한국의 아빠들은 육아의 행복을 느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 같다”며 “프랑스인인 남편은 아이 기저귀를 갈다가 어려운 점이 생기면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더라. 남성들의 육아문화가 뿌리를 내린 방증”이라고 말했다.

 부모교육센터의 임영주 대표는 “아버지는 목소리와 체격이 어머니와 달라 아이에게 또 다른 권위를 가진다. 아빠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부모 삶을 지배하게 하지 말라
프랑스식 육아가 각광을 받는 배경은 뭘까. 임영주 대표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를 꾸짖으면 기를 죽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안 된다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오인해 결국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던 차에 엄격함과 절제를 강조하는 프랑스식 육아법이 나오니 열광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이 중심 육아에 지쳐 있던 우리 부모들에게 프랑스 육아가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얘기다.

 육아가 갈수록 부담이 돼 가는 현실이 ‘부모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임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육아법이 각광받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이순형(아동가족학) 교수는 “한국 부모에게 육아는 경제적 부담과 자기희생이 따르는 인생 숙제가 돼 버렸다”며 “하지만 프랑스 부모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육아 책임을 유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독립적 존재로 키우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여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이 프랑스 육아법의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최영선씨도 “프랑스에선 아이를 키우는 게 스트레스가 아닌 기쁨이다 보니 부모들끼리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온다”고 전했다.

 임 대표는 “엄격함은 원래 우리나라 전통 육아법의 미덕이었는데 어느 순간 실종돼 버렸다”며 “부모가 신발까지 신겨 주는 과잉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 장성하면 그들의 아이 역시 그렇게 교육한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프랑스식 육아법의 절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장소 체벌은 논란거리
프랑스식 육아법에도 논란은 있다. 수면 교육이 대표적이다. 아이와의 스킨십을 중시하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신생아도 다른 방에서 따로 재우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밤에 울어도 당장 안아 주거나 달래 주지 않는다. 대신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라 포즈(la pause·일시정지)’법을 쓴다. 드러커맨은 『프랑스 아이처럼』에서 “늦은 밤 일어나는 소란에 부모가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아기는 오히려 잘 잔다. 반면 아기가 운다고 부모가 곧장 달려가면 그 아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반복적으로 깨게 된다”는 프랑스인 소아과 의사의 분석을 소개했다. 프랑스 아기들이 다른 나라 아기들에 비해 일찍 자는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발렌틴 박사는 “만 2세가 안 된 영아들에게 이런 ‘수면 교육’을 하는 건 프랑스에서도 논쟁거리”라며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체벌 역시 논란거리다. 일부 프랑스 부모는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울 경우 뺨을 때리는 등 체벌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영선씨는 “프랑스에서 실제로 그런 부모들을 보진 못했지만 얘기는 들었다”며 “아이가 흥분상태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체벌을 하지만 스스로 이성을 잃고 폭력을 쓰는 건 아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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