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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시상,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충청도 양반들 입심, 웃어도 눈물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충청도의 힘
남덕현 지음
양철북, 260쪽
1만2000원

충남 홍성이 고향인 이정록(49) 시인은 “모든 말의 태반은 어머니”라 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인생 농사도 그늘 농사라고 혔지” 하는 모친의 한 말씀이 그에겐 시가 된다.

 충남 무창포 인근의 달밭골에 사는 남덕현(47)씨는 마을 노인들 말씀을 받아 적다가 “위대함은 사소함으로만 유지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생의 무겁고 복잡한 의미를 무심하게 내려놓는 얘기에 그는 평안해졌다.

 고추 농사를 망친 두 어르신 대화는 능청 백단의 품격이 느껴진다.

 “잉? 밥이나 한술 말구 가!” “아뉴! 고추밭 물 대야 혀유.” “허허~, 조진 고추밭에 헛물 주는 겨?” “고추가 뭔 죄유! 쌩으루 죽일 순 없잖유.”

 곁에서 듣던 필자는 쓴다. “인생도 나만 조진 게 아니라서 조진 사람들끼리 허물없이 살아가는 힘. 충청도의 힘.”

 두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버스 정류장에서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버스가 꽤 지나쳐 멈췄다. 필사의 질주로 버스에 오른 노인들 입에서 사설이 터져 나온다. “근디, 빠스는 뭔 지랄루다가 노상 스라는 디 안 스구 몇 바꾸 더 구르다가 스는 겨? 잉?”

 “소로 밭 안 갈아 본 겨? 나가 직접 끌구 댕기면서 용을 써두 노상 한두 걸음은 더 나가구 덜 나가구 하는 벱(법)이여, 안 그려?”

 “암만(아무렴)! 소에 비하믄 빠스는 쐬루다가 맨들었지, 등치도 산만허지, 딱딱 금 대기가 쉬워 어디?”

 밑도 끝도 없는 만담이 이어지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요즘 배깥(바깥)이 돌아댕겨 봐. 죄다 독이 오른 겨, 사램덜이. 솔직한 말루다가 시상이 이 모냥으루 심(힘)들어질 줄 워떤 눔이 알았겄어?”

 알았다 한들 어쩌겠는가. 장인 어른 말씀이 약이다. “야, 시상(세상) 일이 한가지루다가 똑 떨어지는 벱은 절대루

는 겨. 사램이 뭔 일을 허잖냐? 그라믄 그 일은 반다시(반드시) 새끼를 친대니께?”

 시시콜콜 인생 잡사를 세밀하게 채록한 목소리는 기쁨과 슬픔이 정답게 포개고 있다. 팔순의 장인어른에게 ‘이제 슬픈 일들은 잊으시고 즐겁게 사시라’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남 서방은 둘이 한가지루다가 후질러져(어지럽혀져)?”

 사투리를 따라 한 줄 두 줄 읽다 보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별거 있간디?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별거 읎다니께? 그란 줄만 알구 살믄 되는 겨!”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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