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은밀하게 위대하게 … 모사드의 맨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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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① 모사드의 야성을 되살린 다간 국장. ② 다간이 사무실에 걸어 놓았던 조부 학살 사진. ③ 1960년대 전설의 모사드 요원 엘리코헨의 가족사진. ④ 2010년 두바이에서 작전중 CCTV에 포착된 모사드 요원들(붉은 원안). [사진 말글빛냄]

모사드
마카엘 바르조하르·니심 마샬 지음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544쪽
2만2000원

“짖기만 하는 개는 상대하지 않는다. 물어뜯는 개는 반드시 제거한다.”

 이스라엘 해외정보공작기관인 모사드의 공작 원칙이다. 저주의 굿판이나 벌이는 전면의 정치그룹은 혀만 있고 이빨이 없으니까 상대하지 않는다. 대신 무기 제조나 테러 공작으로 안보를 위협하는 이면의 적을 찾아내 조용히 무력화시키는 게 이들의 임무다.

 이 책은 이런 모사드가 벌여온 실제 작전을 중심으로 모사드의 정체성과 한계, 그리고 미래를 살펴본다. 이스라엘 정보전문가와 언론인이 함께 쓴 책답게 이론보다 현장성이 돋보인다.

 일단 시작부터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1971년 늦여름.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인 가자지구 해안. 파도를 뚫고 막 도착한 낡은 배에서 아랍인 복장의 남자 몇 명이 황급히 내렸다. 이스라엘 어뢰정이 이들을 쫓아와 발포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들은 주민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자신들을 레바논 난민촌에서 돈과 무기를 들고 온 동포 사절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현지 게릴라 지도자들과 만났다.

 사절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소?” “네. 모두 모였습니다.” 그 순간 사절들은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다. 지역 게릴라 지도부는 전멸했다. 사절들은 난민촌의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가지지구의 붐비는 거리를 익숙하게 통과해 이스라엘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사절의 지도자가 나중에 모사드 11대 국장을 지낸 메이어 다간(2002~2011년 재임)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테러가 발붙이지 못하게 막았다.

 다간은 어디에 부임하든지 자신의 방에 커다란 사진을 걸었다. 유대 노인이 곤봉과 권총을 손에 든 나치 장교 앞에 꿇어앉아있는 사진이다. 그 노인은 다간의 할아버지로 사진 촬영 직후 살해됐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우리가 강해져야 하고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되새깁니다.”

 그는 2002년 활력을 잃어가던 조직을 살리라는 아리엘 샤론 총리의 특명을 받고 모사드 국장으로 부임했다. 훌륭한 외교관이자 분석가였지만 지도자는 아니었던 전임 에프라임 할레비에 실망한 샤론은 테러와 이란 핵에 대항할 대담하고 창의적인 인물을 원했다. 당시 모사드는 작전에 줄줄이 실패하고 해외 요원이 포로로 잡힌 상태였다.

 하지만 다간도 초기엔 조직과 갈등을 빚었다. 조직원들이 능숙했던 정보 분석이나 외교보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위험한 작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일부 간부가 사임해 불만을 토했지만 다간이 ‘모사드의 명예를 회복한 남자’로 칭송받기 시작하는 데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테러조직의 핵심인물이 조용히 사라졌고 시리아의 핵 시설이 갑자기 파괴돼 이스라엘이 더욱 안전해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간 말고는 이렇게 할 사람이 없다는 걸 국민이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사드는 ‘정보 및 특수작전 연구소’라는 뜻의 헤브루어 이름의 앞 문자를 딴 것이다. 책 냄새가 연상되지만 다 가서 보면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65년 5월 1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시장에서 40세 남자가 공개 교수형을 당했다. 그의 이름은 엘리 코헨. 모사드 비밀요원이었다. 아르헨티나에 살다 귀국한 시리아 사업가로 위장해 군부·정계 고위인사와 친분을 쌓아 주요 군사·정치 기밀을 이스라엘에 타전했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6일 전쟁’ 중 시리아군의 동향을 손바닥 보듯 했다. “한 사람의 스파이가 전쟁이 향방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정보 격언대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잦은 보고를 요구한 모사드 일각의 관료적인 행태 때문에 결국 체포돼 처형됐다. 이 전설의 스파이는 예루살렘의 헤르츨 산에 있는 ‘실종군인의 정원’에 추모석으로 남았다.

 사실 모사드도 실수를 범해 망신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97년 9월 25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하마스 정치 지도자인 칼레드 마샤알을 독살하려다 실패하고 2명의 모사드 요원이 체포되기까지 했다. 모사드는 미국의 압력으로 해독제를 제공했고 하마스 창시자 야신과 두 요원을 교환해야 했다. 2010년 1월 19일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고위 군사지휘관인 마흐무드 알 마브후흐를 살해했으나 호텔 CCTV 등에 요원의 얼굴이 찍혔고 위조여권 사용까지 들통났다. 전 세계의 비난과 조소를 동시에 받았다.

 실수도 있었지만 모사드는 목숨을 건 작전으로 조직의 명예를 지켜왔다. 오로지 국가의 명령에 의해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실패한 스파이는 화려하지만 성공한 스파이는 따분하다”는 정보 격언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더 많을 것이다. 때론 은밀하게, 때론 잔혹하게 그들은 일해왔다. 그렇게 충성하고 봉사하고 희생해왔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구약성서 잠언 11장14절의 말씀이다. 이를 외우며 스파이들의 가슴은 뜨거웠을 것이다. 나라마다 조직은 달라도 이런 의지는 하나일 텐데….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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