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첫 한·일전 … "한국, 일본 내내 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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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3월 7일 일본 도쿄의 메이지(明治) 신궁 경기장에서 열린 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예선 한국-일본전을 앞두고 양 팀 선수단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라이벌로 경쟁해 온 한·일 양국은 나란히 아시아 축구의 강호로 성장했다. [사진 축구역사문화연구소]

‘세계축구선수권대회 극동예선 일본 대 한국의 제1시합은 7일 오후 2시 신궁경기장에서 열렸다. 전날 밤 눈이 와서 그라운드 컨디션이 최악이었고, 일본의 장점인 짧은 패스와 지공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한국의 끈질긴 압박에 일본이 1-5로 예상 외의 대패를 당했다. (중략) 체력과 발기술이 뛰어난 한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 내내 압도했다. 일본은 방어하는 데 급급했고(중략) 날카로운 한국의 공격수에 무너졌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한·일전을 다룬 54년 3월 13일자 아사히스포츠의 보도 내용이다. 당시 결승골을 넣은 고 정남식 선생이 대회 기간 중 이 신문을 구입했다. 이를 아들 정환종(63)씨가 이재형(52)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기증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 신문은 한국과 일본의 첫 A매치를 1면과 2면에 비중 있게 보도했다. 2면에는 1927년 일본 국가대표를 지냈던 구쓰와다 미쓰오가 관전평을 썼다.

한·일전을 다룬 1954년 3월 13일자 아사히스포츠.

 이재형 소장은 “당시 한국은 8개월 전까지 북한과 전쟁을 치렀다. 폐허 속에서 훈련할 장소도 마땅히 없었다”고 했다. 아사히 스포츠는 한국이 5-1로 대승을 거두자, ‘모두의 예상을 깬 결과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비에 옷이 젖은 일본 선수들은 추위에 벌벌 떨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신력이 강한 한국 선수들은 ‘추운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구쓰와다는 ‘악천후 때문에 일본의 장점인 짧은 패스가 거의 먹히지 않았다. 패스가 생각대로 되지 않자 경기 내내 한국에 고전했다’고 썼다.

 한국은 5명의 공격수가 W모양으로 포진했다. 구쓰와다는 ‘양쪽 인사이드가 공 배급을 잘해줬다. 최전방의 최정민은 밀집 지역에서도 기교 있게 공을 빼 나와 일본 수비진을 괴롭혔다. 왼쪽 날개 박일갑도 날카로운 돌파로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고 평했다. ‘아시아의 황금다리’라 불렸던 최정민은 2골을 넣었다.

 구쓰와다는 ‘한국의 압박이 빨라 일본 선수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또 한국인들은 타고난 발목 힘이 좋아 일본보다 공을 멀리 보냈다’며 ‘체력에서도 앞선 한국이 일본을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경기 내내 일본은 위축된 플레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구쓰와다는 ‘일본 선수들은 뒤로 물러나는 데 급급했다. 소극적이었고 자신감이 부족했다’며 ‘공이 오면 무책임하게 동료에게 횡패스를 했다. 후반전에만 3골을 내줬는데, 선수들 스스로 어떤 경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반칙으로 끊어야 할 순간에도 점잖았다. 경기 내내 일본이 기록한 반칙은 1개였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16개의 반칙을 했지만 악의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그들은 끝까지 스포츠맨십을 지켰다. 전쟁의 혼란을 겪었음에도 전쟁 이전의 실력 이상을 보였다.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축구 열정에 일본 사람 모두가 감동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일본 팀의 입국을 거부했다. 월드컵 예선은 홈앤드어웨이 방식이었지만 두 경기를 다 일본에서 치렀다. 이유형 감독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출국 허가를 받는 자리에서 “패하면 선수단 모두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1차전 5-1 승리에 이어 일주일 뒤 2차전에서 2-2로 비기며 한국은 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권을 땄다.

 한·일전만큼은 절대로 질 수 없다는 투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8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동아시안컵 3차전은 76번째 한·일전이다. 역대 전적은 40승22무13패로 한국의 압도적 우세다. 호주·중국을 상대로 무득점 무승부를 한 홍명보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끝났다. 남은 한·일전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일전에서 우리가 승리한다면 더욱 값진 경기가 될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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