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 "아직은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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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외국계 보험회사 설계사인 金모(37.여)씨는 최근 한달간 세살짜리 아들을 초등학교 3년생인 딸에게 맡겨두고 출근했다.

회사 내 보육시설이 1월 초 이용자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金씨는 "이달 초 딸이 개학한 뒤로는 동네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지만 값도 비싸고 시설도 형편 없다"고 말한다.

기혼여성의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해온 직장보육시설 사업.

1995년부터 여성 근로자 상시 3백명 이상인 사업장에 설치를 의무화했고, 매년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에는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위한 융자와 대출혜택을 크게 늘렸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한 게 너무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치한 곳이 턱없이 적은 데다 정부 지원을 받아 만든 경우에도 이용자가 없어 애물단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적잖다.

서울 금천구의 W사는 5층 건물의 4층 50평에 있던 보육시설을 지난해 8평짜리 옥탑방으로 옮겼다.

시설이라고는 조그만 미끄럼틀과 TV, 장난감 몇점이 전부다. 이곳 보육교사는 "어린이가 다섯명 있어 문을 닫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2년여간 회사 부근 2층 집을 개조해 어린이집을 운영해오던 D통신사는 "이용 아동이 예닐곱명뿐이어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다"며 지난해 말 폐쇄했다.

서울의 경우 99년 한 때 74곳까지 늘어났던 시설이 지금은 67곳으로 줄었다.

현재 전국의 의무사업장 1백86곳 중 보육시설을 운영하거나 대체 보육비를 지급하고 있는 곳은 39%인 73곳이다.

기껏 만들어 놓은 시설이 외면 당하는 것은 현실과 안맞는 설치 규정 때문이다.

여직원 4천여명인 서울의 한 은행의 경우 종로지점에만 정원 29명의 어린이집을 설치했다. 실제 이용 아동은 10명.

은행 관계자는 "멀리 떨어진 다른 지점의 직원들이 종로지점에 어린이를 맡긴 뒤 각자 근무지로 출근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대부분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은행 등 지점체제로 운영되는 기업들에 공통적인 현상이다.

사업장이 흩어져 있는데도 기업 전체의 여직원 수를 기준으로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데 따른 결과다.

이런 현실 때문에 국내 전체 보육시설 중 직장보육시설이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프랑스의 경우와 비교가 된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이기숙(유아교육과)교수는 영세기업에는 보육비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여러 직장이나 단체가 합동으로 큰 시설을 설립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민간시설 위탁을 지원하는 방안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부 정책개발평가담당관실 김애령 과장은 "지역과 직종에 따라 직장보육시설 수요의 편차가 크므로 공단이나 도심지역 등 수요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혜신 기자.권현진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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