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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전경련이 뭐예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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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아빠, 전경련 회장을 왜 아무도 안하려고 해요?" 며칠 전 중학교 1학년짜리 아들이 아침밥을 먹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어요.

그날 아침 출근길에 가져가려고 전날 밤 프린트한 후 식탁에 올려놓은 과거 신문 기사를 본 모양이에요.

지난 1월 중순 삼성 이건희 회장.LG 구본무 회장.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등이 모두 전경련 회장직을 못 맡겠다고 거절했다는 기사였어요.

요즘 '전경련 위기설'이 종종 거론돼요. 민주당의 몇몇 국회의원들이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거나, 전경련 지도부와 기능을 바꾸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전경련'을 거명하며 "현실을 왜곡하거나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할 정도예요. 대체 전경련이 어떤 조직이고 무슨 일을 하기에 대통령 당선자가 비판하고, 재벌그룹 회장들은 서로 회장을 안 맡겠다고 할까요?

전경련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줄인 말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 경제인들의 모임이에요. 경제인이란 말 속엔 기업인뿐 아니라 소비자.정부도 포함되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전경련은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모임이에요.

기업 중엔 대기업도 있고, 중소기업도 있지만 전경련은 가급적 한해 매출액이 5백억원 이상인 기업만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래서 규모가 큰 기업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각종 협회도 회원이 될 수 있어요. 전기.전자업체들의 모임인 전자산업진흥회나 해외건설협회 등도 회원이고, 산업연구원이나 한국과학기술원 등도 가입해 있어요. 경제단체의 하나인 한국경영자총협회나 정부 산하단체인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에너지관리공단 등도 회원이에요. 이들까지 합쳐 모두 4백여개의 기업.협회가 현재 전경련 회원이지요. 여러분들이 웬만큼 이름을 들어본 기업이나 단체들은 거의 모두 전경련 회원이라고 보면 돼요.

전경련은 이들로부터 회비를 받아 활동하고 있지요. 정부 돈은 한푼도 안받는다는 점에서 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 등 다른 경제단체들과도 달라요.

그 점에서는 오히려 참여연대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같은 시민단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시민단체는 시민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전경련은 기업과 기업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큰 차이점이 있지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 만큼 전경련을 해체할 것인지 아닌지 하는 것은 회원들이 정할 일이에요. 전경련을 탈퇴하는 것 역시 회원의 자유 의사예요.

이렇게 보면 정부나 정치인 등 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전경련을 해체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예요.

대통령 당선자나 국민이 전경련 활동에 불만을 가질 수 있어요. 지나치게 기업 이익만 대변하고, 나라 경제나 국민의 이익은 등한시한다는 비판 등이에요.

그런 점도 많아요. 그러나 기업 경영은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나라 경제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해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정부 등도 경제활동의 중요한 축이에요.

생산활동의 경우에도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지요. 기업가뿐 아니라 근로자도 있고, 기업에 돈을 대주는 은행이나 공장 지으라고 땅을 빌려주는 지주, 회사 자본금을 댄 주주들도 있어요. 이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요.

가령 주주들은 배당을 많이 달라고 요구해요. 그러나 배당을 많이 하면 투자할 돈이 적어지니 장차 고용할 근로자 수가 줄어들고 공장을 적게 세울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기업과 기업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주장이 소비자와 정부.근로자.주주 등의 요구와 충돌할 수밖에 없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죠.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들을 제대로 따져 나라 전체에 큰 득이 되는 접점을 찾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를 실천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에요. 지금처럼 전경련이 비판한다고 해서 해체를 주장하거나 지도부 교체를 요구한다면 누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할까요.

물론 전경련도 과거에 잘못한 점이 없지 않아요. 눈앞의 기업 이익만을 따지거나 국민이나 나라 전체를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지요.

예컨대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고 한 일이나 나라 전체에 이익이 되는 규제조차 없애려 한 일 등을 들 수 있어요.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온상'이란 비난이 일어날 정도로 정치자금을 댄 일도 있지요.

이런 경제단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이나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 영국 산업연맹(CBI), 독일 산업연맹(BDI) 등은 전경련과 비슷한 단체들이에요. 역사적으론 중세시대의 길드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기업의 활동은 국부를 생산하는 중요한 일이에요.

또 기업인만큼 기업활동을 많이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 기업인들의 목소리가 정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전경련과 같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있어야 해요.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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