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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AC 밀란의 브라질 출신 스트라이커 히바우두(가운데)가 유벤투스를 맞아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다.
지난 20년 간 이탈리아 축구는 이탈리아의 오페라나 스포츠카 만큼이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리에 A는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탈리아 클럽팀들은 리라화와 '라 돌체 비타(아름다운 인생)'에 매혹된 전 세계 기라성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의 집합소였다.

하지만 지난 화요일(현지시간) 세리에A 구단들이 새 시즌 개막을 연기하기로 결정하는 등 이탈리아 축구의 명성에 흠집이 나고 있다.

이탈리아의 8개 명문 팀들이 페이퍼뷰 TV채널들과 중계권을 체결하지 못하면서,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IFL)는 이들 클럽팀들이 자신들의 사활이 걸려있는 방송 중계권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해 시즌 1라운드 개막일을 당초 계획보다 2주 뒤인 9월15일로 연기하기로 표결했다.

또한 IFL은 이탈리아 정부에 축구 산업이 위기 국면에 봉착했음을 선포하고 도산 위기에 빠진 클럽팀들에게 조세 감면 등 재정적 혜택을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계 축구 전문가인 키에르 라드니지는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TV 중계권은 단지 방아쇠일 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 축구는 이적료나 선수 연봉 등 그 엄청난 씀씀이를 받쳐줄 재정적 구조를 지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프로팀들은 갑작스러운 TV 중계권 시장의 몰락으로 타격을 입게 됐고, 이 점은 영국이나 독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라드니지는 "이탈리아 축구는 구조적으로 특수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영국 클럽들은 구장을 소유하고 있어 따로 빚을 낼 필요가 없는 고정 자산을 갖고 있는 셈이지만 이탈리아 클럽들은 대부분 실질적인 자산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구단주 개인 보증에만 의존

"이들은 팀의 부채 보증을 위해서는 부유한 구단주나 사장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지게 되면 구단주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들의 사업이 되고 축구 경기와 재미는 제일 먼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경제일간지 일솔레 24 오레(Il Sole 24 Ore)가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0-01 시즌 동안 세리에 A 소속 클럽들이 낸 영업손실액이 총 6억7천3백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많은 클럽들이 선수 연봉지급으로 매출의 80% 이상을 지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이탈리안컵 우승을 차지한 파르마의 경우 팀 연봉액이 총매출의 110%에 달했다.

이탈리안컵 우승을 두 차례나 차지했으며 최근까지도 챔피언스 리그 단골 우승후보 팀으로 거론되던 피오렌티나도 이미 미화 2천2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 부채를 이기지 못해 도산하고 말았다.

피오렌티나는 세리에 A에서 밀려나 세리에 B(2부 리그)로 강등됐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현재는 남은 선수들로 피오렌티나 비올라라는 새 팀을 구성해 이탈리아 4부 리그인 세리에 C2에서 새 시즌을 맞게 된다.

이탈리아 최대 명문팀들 역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화요일 IFL은 로마의 명문팀 라치오가 맺은 세 건의 이적계약을 무효화시켰다.선수 연봉 지급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2000년도 이탈리안컵 우승팀인 라치오는 이탈리아 수비수 알레산드로 네스타나 공격수 클루디오 로페스 등 대형 선수들을 이적시키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까지는 스페인 미드필더 가이즈카 맨디에타에 대해 바르셀로나로 임대 이적시키기로 해 그나마 연봉 부담을 줄여놓은 상태다.

경기력도 추락

그라운드에서 보여지는 이탈리아 팀들의 경기력 역시 현저하게 쇠락하고 있다. 이탈리아 클럽팀들은 1989년과 199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우승컵을 차지한 것은 1996년 유벤투스가 마지막이었다. 지난 세 시즌동안 이탈리아 클럽팀들은 이 유럽 최고 명성의 클럽 대항전에서 4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탈리아 클럽들이 스페인, 영국, 독일 등지의 라이벌 팀들에 뒤쳐지기 시작하면서, 세리에 A는 과거에 독차지했던 최고기량의 선수들을 놓치고 있다. 지난 여름 프랑스의 플레이메이커 지네딘 지단은 유벤투스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 역시 인터 밀란에서의 선수 생활에 별다른 비전이 없다고 판단해 지단의 뒤를 따라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세리에 B와 21세 이하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 소속팀 엠폴리를 우승으로 이끈 이탈리아 축구 스타 마시모 마카론 역시 세리에A로 트레이드 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미들스브로 팀을 선택했다.

하지만 라드니지는 이탈리아 축구 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본다.

"선수와 지도자들의 능력면에서 이탈리아는 스페인, 영국과 함께 여전히 세계 3대 축구 리그에 손꼽힌다. 최근 들어 스페인 리그가 질적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리그의 선수 자원이 더 풍부하다."

"또한 마카론의 이적 문제에 관해서는 그의 기량이 과대 평가된 면이 없지 않다. 그로써는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미들스브로와 입단계약을 맺은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은 이탈리아 밖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지금 당장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국의 축구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 보고 있다.

수요일자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지는 사설을 통해 "이탈리아 축구는 내부로부터의 자정노력이 있어야만 새롭게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한 외국인선수 영입금지 정책은 이 같은 자정 노력을 보여주는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라드니지는 "외국선수 영입금지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탈리아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이탈리아 축구 리그는 좀더 강력한 통제력과 지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 역시 프로 축구팀에 대해 독일의 클럽 인허가제 같은 좀더 강력한 회계 감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어떤 면에서는 피오렌티나가 파산하도록 방치한 것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된 셈이다. 이제는 바닥을 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모든 팀들이 끝까지 시즌을 치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LONDON, England (CNN) / 오병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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