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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110> 경인운하 반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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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람선이 아라뱃길을 따라 김포터미널을 향해 가고 있다. 아라뱃길 개통 1주년을 한 달 앞둔 지난 4월 촬영된 사진이다. [중앙포토]

서울시장으로서 한·일 월드컵 준비를 하느라 한창 바빴던 2002년 초의 일이다. 서울시청에서 나는 경인운하 건설 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경인운하 건설 계획에 들어가 있는 시설인 김포터미널 때문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김포시에 속했지만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시작됐다. 경인운하 건설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한 모 연구용역회사의 임원이 연구결과를 보고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수상 운송은 육로 운송에 비해 운임 단가는 싸지만 배에 짐을 싣고 내리는 데 비용이 더 든다. 나는 질문을 던졌다.

 “보고서를 보면 경인운하의 수상 운송 거리가 18㎞에 불과합니다. 운송비보다 물류 상·하차료가 더 들 텐데 그에 대한 검토는 한 겁니까. 경제적 이점이 얼마나 있는 겁니까.”

 “….” 대답이 없었다.

 나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운하 물동량은 얼마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근거가 불분명한 추정치만 나열할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을 했다.

 “도대체 뭘 실어 나르겠다는 겁니까. 운하를 이용할 선박 주종은 벌크입니까, 컨테이너입니까.”

 “….”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운하를 이용할 화물의 종류는 물론 수송량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내 불편한 기색을 읽었는지 용역보고 내용을 설명하던 그 임원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김포터미널 부지 면적을 확보하는 데만 계속 열을 올렸다.

 ‘염불보다는 젯밥 생각만 하는구나’. 속으로 혀를 찼다. 월드컵 준비로 바쁜 때에 괜한 시간 낭비만 했구나 싶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서울시는 경인운하 건설 사업 추진을 반대한다’고 결론을 냈다.

 1년이 지난 2003년 굴포천 방수로 사업과 경인운하 사업에 대한 정부 방침을 다시 정립하는 절차가 국무총리실에서 진행됐다. 이번엔 국무총리로서 경인운하 사업 계획서를 살펴보니 1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해 9월 내가 주재하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경인운하 사업을 재검토하라’는 결론을 냈고 사실상 무산시켰다. 대신 상습 침수지역인 굴포천에 방수로를 설치하는 사업은 국고를 지원해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08년 12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경인운하 건설을 추진하기로 번복해 결정했다. 회의 이름은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로 바뀌고, 총리와 장관 등 참석자 면면이 달랐지만 회의체의 성격은 같았다. 하지만 5년 전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냈다.

 ‘아라뱃길’로 이름을 바꾼 경인운하는 2012년 5월 개통됐다. 2조2000억원을 투자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하지만 내가 우려했던 대로 운하 사업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변질됐다. 170만㎡에 달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주는 특혜도 줬지만 지금 아라뱃길의 모습은 어떤가. 내가 경인운하를 반대했던 이유를 곱씹어 볼수록 아쉬움이 커질 뿐이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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