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때 후보가 연봉 11억 … 몸값 부풀려진 중국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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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1차전에서 일본 사이토(왼쪽)는 발을 들고 달려들고, 중국 순케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다. [임현동 기자]

시진핑(60·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국제사회에서 ‘신중한 개혁가’로 불린다. 건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해 부패 척결, 실리적 개혁, 실용적 민족주의 강화 등의 과제를 장기 마스터플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그런 시 주석이 조급증을 내는 분야가 있다. 축구다. 시 주석은 소문난 축구광이다. 부주석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아일랜드 방문 시 축구장을 찾았다가 갑작스러운 시축 제의를 받고 구두를 신은 채 킥을 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중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던 중 “월드컵을 꼭 개최하고 싶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시 주석에게 성장 속도가 더디고 때때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 축구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중국은 지난달 15일 중국 허페이(合肥)에서 열린 태국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가동하고도 졸전 끝에 1-5로 대패했다. 자국 언론이 ‘6·15 참사’로 이름 붙인 이 경기를 지켜본 시 주석은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런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라”고 국가체육총국(체육부에 해당)에 불호령을 내렸다. 태국전이 도화선 역할을 했지만, 실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조기 탈락하는 등 수년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중국 대표팀의 부진을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었다.

 최고통치권자의 한마디는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중국축구협회는 계약기간을 1년6개월이나 남긴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58·스페인) 대표팀 감독에게 위약금 645만 유로(약 95억원)를 물어준 뒤 경질했다. 체육총국은 산하단체이던 축구협회를 분리시켜 독립기구로 운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향후 중국축구협회는 국가대표 선발권 등을 포함해 축구 관련 정책을 직접 총괄할 전망이다.

 정부 차원의 개혁 의지는 강력하지만 중국 축구가 환골탈태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수퍼리그 클럽 칭다오 중넝(靑島 中能)을 이끌고 있는 장외룡(54) 감독은 “중국은 1가구 1자녀 정책 탓에 아이들이 ‘소황제’라 불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중국 부모들도 우리나라처럼 아이가 공부로 성공하길 원한다. 인구는 많아도 정작 축구선수를 하겠다는 유소년은 많지 않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축구 선수를 발굴·육성하는 시스템도 열악하다. 중국에는 학교 축구팀이 없다. 축구를 배우려면 클럽팀에 입단해야 하는데, 비용이 적지 않다. 중국 축구 사정에 밝은 한 에이전트는 “중국에서 자녀에게 축구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의 부자는 3000만 명 정도”라며 “광저우 헝다(廣州 恒大)가 지난해 스페인 명문 레알마드리드와 손잡고 7000명을 가르칠 수 있는 대규모 교육시설을 완공했지만, 수업료가 한 달 평균 7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 회원 모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신력도 문제다. 중국 프로축구는 선수 몸값 인플레가 심각하다. 부동산 재벌들이 앞다퉈 프로축구단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적료와 연봉이 껑충 뛰었다. 전북 현대 시절 벤치를 지켰던 중국 대표팀 미드필더 황보원(26·광저우 헝다)의 현재 연봉은 11억원에 달한다. 승리수당 5000만원과 득점수당 1000만원은 별도다. 자국 리그에서 꾸준히 뛰기만 하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으니 유럽 진출 같은 도전을 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은 2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동아시안컵 1차전에서 3-3 무승부를 거뒀다. 1-3으로 밀리다 후반 막판 두 골을 만회해 동점을 만들었다. 겉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지만 중국 축구에 정통한 이장수(57)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다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모습이 이번 경기에서도 보였다. 내가 광저우 헝다를 지휘할 때도 자주 보았던 모습”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국은 2010년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 0-3으로 일격을 당했다. 그 전까지 한국은 32년간 중국을 상대로 15승11무를 거뒀다. 중국 언론은 마침내 ‘공한증(恐韓症)’을 깼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24일 한국은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중국을 상대로 설욕전을 벌인다.

글=송지훈·박린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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