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배용의 우리 역사 속의 미소

언제나 기쁨, 수행정진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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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배용
전 이화여대총장

실 꾸러미를 무릎 위에 놓고 바늘귀에 실을 꿰려고 한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 짓는 모습의 이 나한상은 백양사 대웅전에 놓여 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들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일컫는다. 나한상의 표정들은 매우 다양하다.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 호랑이를 손에 쥔 모습, 등 긁는 모습, 종을 들고 있는 모습, 책 읽는 모습 등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매우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백양사는 전라남도 장성, 백암산 밑에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총림이다. 백제 때는 백암사라 칭하다가 고려시대에는 정토사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백양사로 고쳐 불렀다. 그 연유는 백학봉에 사는 흰 양이 암자로 찾아와 무릎을 꿇고 스님의 독경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가곤 하다가 사람의 몸으로 환생하였다는 일화에서 절 이름을 백양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한상(羅漢像). [백양사 소장]

 옆에 흙으로 빚은 나한상의 이름은 ‘아나율존자’다. 아나율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제자가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설법하던 중 졸고 있다가 꾸중을 듣고 깨달음 속에 앞으로는 절대 자지 않고 수행정진에 전념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 후 계속 잠을 자지 않고 눈을 혹사하다 시력을 잃었는데, 그러나 지혜의 눈(心眼)을 떠 천안(天眼)제일의 불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해진 옷을 꿰매기 위해 바늘귀를 꿰려고 하는데 그 일이 여의치 않자 주위에 도움을 청하면서 “누가 이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복을 짓지 않겠는가” 하니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부처님께서 실을 꿰어 주셨다. 이에 묻기를 “복덕을 다 지으신 부처님께서 무엇을 더 하시려나” 물으니 대답하기를 “복은 많이 지을수록 좋기 때문에 나는 작은 복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였다. 작은 공덕도 소중함을 깨닫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흔히 사찰에 가면 추녀 끝 풍경에 매달린 물고기를 본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수행정진 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나한상은 항상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어려움도 기쁨으로,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