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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그 실체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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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
장대익 지음, 바다출판사
264쪽, 1만3800원

실로 ‘인문학’의 시대다. 동네도서관 어린이 강좌부터 대학 CEO 최고위과정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열풍이다. 사랑에 목마른 사람이 사랑을 강조하듯, 우리 시대가 인문학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인문학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구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떠난 스티브 잡스는 “우리의 가슴을 노래하게 하는 것은 핵심 교양과 결혼한 테크놀로지, 인문학과 결합한 테크놀로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핵심 교양은 무엇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인 장대익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시작된 지점에서 문사철(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학적 반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본성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학습하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무언가를 탐구하는 생명체는 오직 인간뿐이며, 인간의 탐구 행위 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높은 행위는 ‘과학’이라는 경험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탐구하는 인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우리에게 탐구는 즐거운 과정이라기보다 경쟁의 수단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선행학습을 하고, 높은 경쟁을 통해 카이스트에 입학한 영재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살할 정도로 경쟁의 압박은 계속된다.

 더 놀라운 것은 과학자들은 끊임없는 비판을 통해 객관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이 사회적 쟁점이 될 때마다 과학계는 당연히 ‘한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언론은 정치·종교·교육 등의 쟁점이 떠오를 때면 찬반양론을 전제하지만, 과학 항목에 이르면 논쟁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 책에 나오는 예는 아니지만, 천안함 폭발 과정에 대한 국방부의 발표에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표하면 대뜸 ‘종북’이라는 섬뜩한 단어로 제압한다.

 인간은 ‘따라쟁이’다. 이 특징을 반영한다면 ‘호모 리플리쿠스(따라 하는 인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란 노래를 부르며 희한하게 춤을 추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도 그 춤을 따라 춘다. 그 춤은 말을 타는 동작을 응용한 것으로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말춤은 빠르게 복제되면서 진화해 전 지구로 퍼져나갔다.

 인간에게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밈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복제본을 많이 퍼뜨리는 게 지상목표다.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밈은 성서·영화·스마트폰이다. 밈에게는 자신의 운반체인 인간의 손익은 관심사가 아니다. 밈은 멘탈 연가시가 돼 멀쩡한 개체들을 ‘멘붕’에 빠뜨리기도 한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 된 데는 자연계의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도 한몫 했다. 우리는 다른 생물에 대한 우애와 자연에 대한 깊은 친화력을 갖고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 2010년 정부는 ‘구제역 청정 국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350만 마리의 소를 생매장했다. 그런데 연간 육류 수출 규모가 고작 20억 원 정도였단다.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신앙’이 있다. 특정 종교 성향의 임의단체가 청원을 하니 과학교과서의 저자들이 시조새와 말의 진화부분을 빼겠다고 하는 건 약과다.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자살 테러는 종교 때문에 일어났다. 인간을 ‘호모 렐리기오수스(신앙하는 인간)’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많은 단점에도 인류는 앞으로도 당분간은 지구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융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융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으며, 섞지 않으면 새롭고 창의적인 것들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호모 콘베르게니쿠스(융합하는 인간)’라고 부를 수도 있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가 쉽게 읽힌다.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내용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가져야 할 관점과 인문학과 과학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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