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학생운동] 조유식 86년 구국학생연맹 투쟁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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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잘못 생각했고 틀린 길을 걸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을 잘못 이끈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벌써 주체사상을 버렸다.

주체사상에 대한 회의는 '강철 서신'의 저자인 김영환과 함께 안내원을 따라 밀입북한 91년부터 시작됐다. 북한에서 주체탑에 갔을 때다. 계단 가운데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카펫을 밟지 않고 바깥쪽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때 관리원이 소리쳤다. "이 새끼야! 왜 그리로 올라가."

평범한 인민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관리원의 위세는 대단했다. 북한은 그런 사회였다. 주체탑 관리원조차 인민들에겐 위압적인 존재였다. '주체사상'의 북한에는 인민이 '주체'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무너져 내렸다. 토론도 싱거웠다. 북한 사람들은 교과서적인 얘기만 거듭했다.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기본적 고민은 '기존 체제에 흡수돼 잘 살 것이냐, 그걸 버리고 사회적 공공선을 택할 것이냐'였다. 개인보다 사회가 앞섰다.

되돌아보면 오류가 많았다. 지나치게 관념적이었다. 현실을 딱 한발짝 앞서서 끌어갔어야 했는데, 우리는 열발짝 이상 앞서 있었다. 아예 방향이 틀리기도 했다. 학생이라 아직 어렸고 사회적 경험도 부족했다. 시행착오에 대한 지적들을 죄다 '기성세대의 합리화'로만 돌린 것도 잘못이었다. 당시의 한계였다.

<바로잡습니다>

◇2월 17일자 5면 '운동권, 신주류로 뜬다'의 사진설명에서 박선원씨의 현직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에서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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