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커플 진시영·오정아 '환상의 커플'로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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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배 페어바둑 결승에서 진시영 - 오정아(왼쪽) 조와 박승화 - 김혜림 조가 대결하고 있다. 진시영 - 오정아 조는 최상의 하모니로 강자들을 연파하고 우승을 일궈냈다. [사진=한국기원]

남자와 여자가 한 팀을 이뤄 대국하는 페어바둑은 실력이 강한 남자 기사에겐 고통과 인내의 시험장이다. 파트너인 여자기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실망해선 안 된다. 설사 실망했더라도 그걸 드러내는 건 금물이다. 한숨을 쉬거나 얼굴이 붉어지면 파트너가 금방 위축되고 만다. 여자기사는 전략을 주도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파트너에게 너무 의존해서도 안 된다.

자신감을 갖되 서로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혼자 좋은 수를 봤더라도 내 편이 그걸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과 마음이 하모니를 이뤄야 하는 페어바둑은 분명 바둑의 새로운 영역이다.

 16일 열린 제3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 결승에서 진시영-오정아 조가 박승화-김혜림 조를 꺾고(196수, 백불계승) 우승컵을 차지했다. 진시영 5단은 한국랭킹 35위, 오정아 2단은 여자랭킹 8위다.

준우승 팀인 박승화 5단은 한국랭킹 40위고 김혜림 2단은 여자랭킹 10위다. 실력보다는 호흡이 더 중요하고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세돌-김은선(12위)조는 2회전에서 탈락했고 아마추어 기사와 팀을 이룬 박정환 조는 1회전에서 탈락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진시영 5단은 우승 비결을 묻자 “가장 중요한 것이 파트너십인데 정아랑 아주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정아 2단도 “파트너와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남자 파트너에게 맞추려고 눈치를 보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져 위험하다. 때로는 내 바둑을 둔다 생각하고 자신감 있게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정아 2단은 지난해 조한승 9단과 팀을 이뤄 준우승했고 얼마 전 열린 2013인천 실내&무도에선 강승민 3단과 짝을 이뤄 동메달을 땄다. 일반 바둑보다 페어바둑에서 훨씬 강한 모습을 보이며 ‘페어의 여신’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페어바둑은 아직 새로운 영역이고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오정아는 “서로 스타일도 다르고 남자기사와는 실력 차이도 있기 때문에 수를 읽기가 더욱 어렵다. 상대의 수는 물론이고 파트너의 수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바둑은 본시 날카롭게 상대의 의중을 분쇄하는 것인데 페어바둑은 한편으로는 분쇄하고 한편으로는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뛰어난 포용력으로 우승을 일궈낸 진시영 5단은 “여자 선수의 실수를 남자가 커버해 줘야 한다. 또 (여자의) 실수가 나왔을 때 주눅들지 않게 표정관리나 마인드컨트롤을 잘해야 한다. 여자 선수가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면 결국 팀의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회 내내 맞춰주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만 보면 페어바둑은 부부생활과도 닮았다. 이런 재미와 특성으로 인해 페어바둑은 일본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회를 후원하는 SG세계물산 이의범 회장은 “내년엔 한·중·일 페어대회를 열고 싶다”고 밝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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