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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싫은 사람 미운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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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철환
JTBC 대PD

록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열 번 넘게 본 것 같다. 배역이 바뀔 때마다 극장을 찾았으니 이제 앙상블 역할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다. 가사를 쓴 팀 라이스와 곡을 만든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작품이 태어나던 1970년에 이십대의 젊은이들이었다.

 스타가 아니고 왜 슈퍼스타일까. 스타는 팬을 몰고 다니지만 슈퍼스타는 제자를 이끌고 다닌다. 이런 점에선 공자·석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늘 제자와 어울려 다녔다. 도대체 뭘 하며 지냈나. 늘 문답하고 그 해답을 실행에 옮기며 살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교사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걸 자부하는 편이다. 적성에 맞게 국어선생을 했으니 그 점도 다행이다. 국어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가르치는 과목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국어 실력이 줄어들어 큰일이다. 말을 잘못한다기보다 잘못 알아듣고 안 좋은 말을 자주 쓰는 게 안쓰럽다.

 우리는 국어시간에 주제 파악을 익혔고 비슷한 말 반대말도 배웠다. 뉴스에 보이는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는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 문단 나누기, 핵심어 찾기 연습을 했고 시험도 많이 보았을 텐데 실력이 영 못 마뜩하다. 그러니 대화가 잘 풀릴 리 없다. 온라인 세상이 더 활기차진 것도 한몫했다. 그들은 소통하는 게 아니라 같은 편끼리 한쪽에 몰려 있다가 어쩌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면 바로 묵사발을 만든다.

  내가 지어낸 당근의 비유가 있다. 소풍을 갔는데 어떤 학생이 김밥 속의 당근을 모조리 분리수거(?)한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당근을 싫어한단다. 엄마한테 미리 말하지 그랬냐니까 엄마는 굳이 당근을 먹어야 한다며 억지로 끼워 넣는단다. 학생은 자기 취향을 무시하는 엄마에게 행동으로 불만을 표한다. 당근이 싫으냐고 거듭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본다. 넌 당근을 미워하냐. 대답을 주저한다. 그는 당근을 싫어하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소풍은 수업의 연장이다. 국어선생님은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한다. 싫어하면 안 먹으면 된다. 그러나 싫다고 미워하면 안 된다. 미움은 본인과 대상에게 해를 입힌다. 당근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하면 나중엔 농부까지 원망한다. 마침내 당근밭으로 달려가서 농성을 할지도 모른다. “나쁜 농부는 각성하라. 당근을 폐기처분하라.”

  좋은 사람의 반대말은 싫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그저 싫은 사람일 뿐인데 나쁜 사람이라고 구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개의 경우 싫은 사람은 그저 나하고 안 맞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맞는 사람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틀린 사람인가, 그른 사람인가. 어떤 이가 옷가게에서 ‘이 옷은 나한테 안 맞아요’라고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 옷이 틀렸네요’ ‘이 옷이 글렀네요’ ‘이 옷이 못됐네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떤가. 자기하고 안 맞는 사람을 틀린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속단한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널리 퍼뜨린다.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사람의 비슷한 말을 친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안 친한 사람은 싫은 사람, 심지어 나쁜 사람으로 분류되곤 한다.

 슈퍼스타로 돌아가자. 제목만 보면 예수가 주인공일 것 같은데 실제로 무대를 뒤흔드는 건 그를 배신하는 유다라는 점이 특이하다. 유다는 왜 스승을 팔았을까. 유다가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가 그의 속맘을 대신한다. “어떻게 그를 사랑해야 할지 난 모르겠다.”(I don’t know how to love him) 극중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르는 노래로 유명하지만 유다의 노래도 울림이 크다. 전후를 살펴볼 때 예수는 유다를 미워하지 않았다. 유다도 예수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했다. 예수는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유다를 대했다. 그러나 유다는 믿지 않았다. 의심했고 예측하건대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스타는 멋진 사람이지만 슈퍼스타는 거기에 더해서 값진 사람이다.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혼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다. 그들은 용서하고 감싸 안는다. 증오로 되갚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로 세상이 좀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주철환 JTBC 대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