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귀 막은 남편·외아들 때문에 힘들다는 40대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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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갑내기 남편과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40대 초반의 전업주부입니다. 남편과 아들 둘 다 청개구리 같아 정말 답답합니다. 말 안 듣는 아들 둘 키우는 기분이랄까요. 남편은 술을 자주 마셔서인지 배가 많이 나왔는데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시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터라 몸을 좀 챙겼으면 좋겠는데 자료를 찾아 보여주며 열심히 설득해도 쇠귀에 경 읽는 수준입니다. 아들도 아빠를 닮아서인지 도대체 말을 듣지 않고요. 둘이 작당하고 나를 무시하나 싶어 자존감마저 흔들립니다.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 설득(說得)은 ‘말로 얻는다’는 한자 의미처럼 설득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을 행동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소통방식)입니다. 건강을 챙기라는 진심 어린 조언(advice)에 객관적 자료를 통한 권고(recommendation)까지…. 아내분 노력이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결과는 자존심의 상처입니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에 가족 간 관계까지 소원해집니다.

 객관적 증거에 근거한 권고를 담은 짧은 조언은 우리가 주로 쓰는 설득법입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노력에 비해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엔 나를 위한 타당한 설득조차 튕겨버리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저항이라고 합니다. 저항은 옳지 못한 꼬임에나 작동해야 하는데, 내 마음은 거꾸로 진지한 설득에 저항하고 부당한 꼬임에는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이틀 연속 과음한 후 ‘오늘은 꼭 일찍 집에 가겠다’고 나 스스로를 설득하건만 ‘오늘 비도 오는데 막걸리 생각나네’라는 선배의 문자 한 방에 결심은 날아가 버립니다. 같이 술 먹자고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충고와 설득은 그 사람을 감동시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엄마가 자녀에게 하는 애정 어린 충고만 봐도 알 수 있죠. 과거보다 자녀 수가 적다 보니 모성 에너지가 한 자녀에게 집중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자녀를 공부하게 만드는 건 쉽지 않습니다. 논리적 설득이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면 공부 열심히 안 하는 자녀는 없을 겁니다. 물론 담배를 피우거나 과음을 하는 남편도 없겠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사람에게 저항하는 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남편과 아들을 생각해 열심히 조언했을 때 반응이 신통치 않은 건 아내를, 그리고 엄마를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항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내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가 제한되거나 위협받을 때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아무리 상대방 주장이 논리적으로 이해되더라도 말이죠. 인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자유는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고자 한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만큼 저항이 강할 수밖에 없죠.

 사람이 동물과 달리 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언어 때문입니다. 내 사고와 말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세계인 무의식, 그리고 감성의 영향을 상당히 받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중적입니다.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상이한 두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밉다고 매번 이야기할지라도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속마음은 고마워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항은 상반된 두 감정을 가지는 양가감정을 일으킵니다. 양가감정이란 변화에 대한 딜레마입니다. 좋은 조언을 해줘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상대방을 잘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리와 열성만으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저항과 양가감정을 잘 다뤄야 합니다. 저항이 거세면 무시당했다 생각하지 말고 그만큼 양가감정이 크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저항은 내 제안에 대한 거절이 아니라 양가감정의 갈등이니까요. 사실 말 잘 듣는 예스맨보다 저항이 심한 사람일수록 양가감정을 잘 다루면 오히려 행동변화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열린 질문(open question)과 반향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이 저항과 양가감정 해결에 효과적입니다. “담배 끊기 싫어? 공부하기 싫어?” 같이 상대방에게 네·아니요만 나오게 묻는 건 닫힌 질문입니다. 반면에 “담배 끊으면 어떤 점이 제일 힘들까, 요즘 학원 분위기는 어때”는 열린 질문입니다. 열린 질문은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저항감을 줄여 줍니다. 또 다른 사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행동을 변화하기로 한 것이라 동기부여가 더 강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청혼에 적용해 볼까요. “나를 남편감으로 어떻게 생각해”는 열린 질문입니다. 나중에 결혼 생활 하다 후회돼도 아내는 “내 선택이니 더 노력해 보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랑 결혼하지 않을래”는 닫힌 질문이기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네가 결혼해 달래서 승낙했는데 이게 뭐냐”라는 후회만 커집니다.

  평소 하는 대화를 적어 보세요. 아마 열린 질문이 거의 없을 겁니다. 질문 자체를 잘 안 하거니와 설령 질문을 한다 해도 대부분 지시조의 닫힌 질문입니다. 열린 질문을 권유하면 많은 분이 “바쁜 세상에 언제 그러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조급함에 쫓기어 하는 설득은 저항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열린 질문은 저항을 넘어 상대방에게 동기부여를 일으킬 수 있는 시동 키(열쇠)입니다.

 물론 질문만 한다고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반향적 경청이 효과적입니다. 만약 “담배 끊을 때 어떤 점이 제일 힘들어요”란 열린 질문에 상대방이 “업무 스트레스가 쌓일 때 한 대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 참기가 쉽지 않아요”라고 대답하면, “맞아요, 스트레스가 많죠, 업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담배를 급하게 끊으면 좋지 않겠네요”라고 답하는 게 반향적 경청입니다.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 상대가 이처럼 내 고통을 이해해 주면 저항 없이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고 행동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동기부여까지 됩니다.

 이번 주엔 가까운 이에게 열린 질문이라는 소중한 마음의 선물을 연습해 보면 어떨까요. 자연스럽게 내 말이 남의 마음을 기분 좋게 어루만져 주는 힐링 도구가 될 테니까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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