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안 터지나 … KT 이상한 시연회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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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연구원들이 16일 경기도 안양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며 900㎒ 주파수 품질 영향 시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16일 오전 경기도 안양시 달안동을 달리는 차량 안. 한 손에 측정기를, 다른 손에 LTE 스마트폰을 든 KT 직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속도가 내려가죠?” 곧이어 스마트폰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 상태가 고르지 않았다. “통화도 막 끊기네요.”

 이상한 시연회가 열렸다. ‘얼마나 잘 터지나’가 아니라 ‘얼마나 안 터지나’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KT 현장 검증은 안양시 달안동의 KT안양지사에서부터 지하철4호선 평촌역까지 약 5㎞를 승합차로 주행하며 이뤄졌다. 오성목 KT 네트워크부문장은 “2011년 6월 이전에 출시된 구형 RFID가 이동통신용 900㎒의 대역과 겹친다”며 “이 때문에 데이터 전송속도가 정상치의 절반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900㎒는 두 배 빠른 LTE 안 돼”

 현재 이동통신 3사는 LTE용으로 각각 주파수 대역을 2개씩 확보하고 있다. SK텔레콤은 850㎒ 대역에서 전국망 서비스를 하고 1.8㎓ 대역을 보조망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LG U+는 800㎒에서 전국망, 2.1㎓를 보조망으로 쓰고 있다. KT는 LTE용으로 1.8㎓ 대역과 900㎒를 보유하고 있지만 1.8㎓ 대역에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다.

 KT가 애가 단 것은 최근 경쟁사들이 ‘2배 빠른 LTE’인 LTE-A 서비스를 내놓고 있어서다. SKT는 지난달 말 LTE-A 상용화를 발표했고 서울 전역과 6대 광역시, 경기도·충청권 시 등 50여 개 시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LG U+ 역시 이번 주 내로 LTE-A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날 시연회에서 김영인 KT 무선액세스망품질담당 상무는 “900MHz 주파수대 간섭 문제가 심각해 올해 이 대역에 47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이 문제 해결과 신규 주파수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경쟁사보다 불리한 형편을 다음 달 있을 새 주파수 경매에서 배려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쟁사들은 “새 주파수 할당과 900㎒ 대역을 연계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며 “900㎒ 대역은 KT가 스스로 택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800·900㎒와 2.1㎓ 주파수를 할당했을 때 최우선권을 가졌던 KT는 900㎒를 선택했다.

SKT·LGU+ “KT 주장 어불성설”

 이번 주파수 경매의 핵심은 KT가 현재 사용하는 LTE용 1.8㎓ 주파수의 인접 대역이다. KT가 이 대역을 가져갈 경우 타사보다 적은 투자비로, 속도가 빠른 광대역 LTE 서비스를 먼저 시작할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대역을 포함하는 안과 제외하는 안을 동시에 내놓고, 이 중 통신사들이 적어낸 입찰금의 총합이 큰 쪽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돈을 더 쓰는 쪽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KT는 “경쟁사들이 우리가 인접 대역을 받는 것을 막으려고 출혈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현재 경매 규칙에서는 SKT와 LG U+가 실제로 지불하지도 않을 높은 가격을 적어내 KT에 가격 부담을 안긴 뒤, 자신들은 낮은 가격으로 다른 주파수를 낙찰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KT는 "달리기 시합에서 목발을 짚고 뛰어야 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회사가 입찰 주파수를 변경할 경우 이전에 적어낸 금액 이하로 새로 입찰하지 못하도록 규칙을 정해달라”고 덧붙였다.

 SKT와 LG U+는 “룰이 공표된 후에 가타부타 말하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입을 모았다. SKT 관계자는 “다른 회사는 인접 대역이 아닌 곳에서 초기 투자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인접 대역을 가져갈 기회를 얻은 KT가 불만을 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고 반박했다. LG U+ 역시 “KT 인접 대역이 경매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동일한 출발선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새 주파수 경매 방식과 일정이 확정된 뒤에도 통신업체들 간의 반발과 갈등이 계속 커지는 이유는 이번 주파수 경매가 군사용으로 사용하던 1.8㎓를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급하게 마련된 탓이다. 이 때문에 미래부가 주파수 공급과 수요에 대한 예측은 물론 사전 예고를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졸속 행정으로 경매안 확정”

지난달 21일 열린 ‘주파수 할당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대표적이다. 미래부는 ‘007 작전’을 벌인 끝에 지난달 20일 ‘할당방안 및 경매규칙’을 발표하고 바로 다음 날 최종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8일 만에 할당방안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의견수렴과 소통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통업계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은 할당방안 및 경매규칙 설계의 중요성을 감안해 최대 2년7개월(네덜란드)의 의견접수 기간을 두고 전문가와 통신업계의 견해를 수렴한다.

 민주당 최재천 의원은 “미래부는 주파수 할당방안 발표 및 확정과정에서 졸속·밀실행정과 불통으로 일관했다”며 “국가 공공재 정책이 물밑에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중장기 주파수 확보 계획인 ‘광개토플랜’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이번 할당안은 이통사들의 입장에 따라 KT 인접 대역이 경매에 포함될 수도 있고, 제외될 수도 있다”며 “정부가 논란이 되는 대역을 경매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이통사들에 떠넘긴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판을 벌여놓고, 이후에는 통신사들이 알아서 ‘베팅’하라며 발을 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할당안을 설계하는 과정에 사업자들이 직접 참여했으며,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왔다”며 “할당안은 충분한 검토 끝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심서현·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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