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 관료들 경제개혁에 반기 … 책상 내리치며 격분한 리커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중국 경제 개혁을 둘러싸고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공무원들이 대립하고 있다. 투자와 수출에 의존하던 경제 발전 모델을 부가가치산업 육성과 소비 주도 경제로 바꾸겠다는 리 총리의 정책에 실무 부서가 현실적 여건 등을 이유로 반대한 게 갈등의 핵심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신지도부의 개혁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5일 중국 국무원(행정부)이 지난 3일 발표한 상하이(上海) 자유무역지대 설립 계획에 대해 중국 은행감독위원회(은감위)와 중국 증권감독위원회(증감위) 등 금융 산업 규제 부서가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에는 자유무역지대 내 관세 철폐와 위안화 역외 거래, 화폐 유통 자유화, 외국 금융업체의 지사 설립 자유화 등 파격적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중앙일보 7월 5일자 2면

 그러나 이 같은 계획 확정을 위해 국무원 산하 부서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은감위와 증감위 반대가 심했다. 예컨대 증감위는 외국의 상품거래소가 자유무역지대 안에 선물 인도 창고를 만들도록 허용하는 안과 관련해 “아직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며 이 계획을 제외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자유무역지대에 선물 인도 창고를 세우면 한국의 부산과 싱가포르에 있는 선물 인도 창고의 기능을 크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며 중국 기업들의 무역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은감위는 중국 은행들이 자유무역지대에서 역외 은행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에 반대했다. 상하이 푸둥 개발은행이 이미 시범사업으로 역외 은행 거래 인증서를 받고 있어 새로운 개방 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리실은 “자유무역지대는 상업 은행들이 역외 은행 서비스의 위험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시험장이며 역외 은행 서비스가 활성화돼도 역내 금융시장에 주는 영향은 적고 리스크 관리도 가능하다”며 일축했다.

 이들의 반대가 계속되자 리 총리는 비공개 회의에서 이성을 잃고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실망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특정 정책에 대한 정부 부처의 반대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총리 직속인 금융 감독 부서가 공개적으로 총리에 대항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이번 갈등은 중국의 새 지도부가 오랫동안 지체된 경제 개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그 개혁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리 총리는 지난 3월 취임 후 곧바로 상하이를 방문해 이 같은 구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상하이를 통해 고부가가치 경제 성장모델을 만들고 시행 착오를 극복해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상하이 시 정부 측에 외국 투자를 유인하는 데 필요한 정책 변화 목록을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이후 두 달 동안 리 총리는 21개 안을 담은 초안을 만들었다. 21개 안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외국 은행들이 자유무역지대 안에서 자유롭게 지사를 설립하고 중국 은행과 합작 투자를 할 수 있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상하이시는 중앙 정부에 별다른 로비를 하지 않았고 리 총리가 주도했다. 총리는 상하이를 자신의 경제 개혁 시험대로 활용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지대는 그의 자식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 내 다른 도시들도 상하이 모델을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리 총리는 상하이 모델이 아직 시행되지 않아 이 모델의 전국 확산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