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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세리머니도 전문 프로화 시대

중앙일보

입력

매 경기장마다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날로 더해가고 있는 2002삼성파브 K-리그가 구름관중에 보답이라도 하듯 연신 멋진 플레이와 골로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더해가고 있다.

골도 골이지만 선수들의 독특한 골세리머니는 한 여름 밤의 무더운 열기를 잠시나마 식히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골세리머니를 보여주고 있는 선수는 안양의 브라질 용병 뚜따. 뚜따는 지난 달 24일 성남과의 경기에서 전반 최태욱의 패스를 받아 선취 득점을 올렸다. 그런데 골을 넣고 난 후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의 독특한 골세리머니 때문.

골을 성공 시킨 후 동료 안드레와 코너부근으로 가더니 안드레가 먼저 뚜따의 머리를 향해 힘껏 발을 휘둘렀다. 아찔했을 법한 순간에 뚜따는 능숙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고 안드레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이후 뚜따가 안드레가 한 동작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둘은 서로의 머리를 향해 연신 발을 내밀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성남 팬들은 원정 팀인 안양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한국의 전통무예 택견을 연상케 한 뚜따의 세리머니는 브라질의 전통무예 ‘까뽀에라’의 한 동작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안양은 지난 달 21일 부천과의 경기에서도 안드레가 골을 넣은 뒤 역시 브라질 용병인 히카르도와 함께 구두 닦는 세리머니를 선보였고 17일 대전과의 경기에서는 뚜따가 트위스트 골세리머니로 골 맛의 대미를 장식했다.

안양의 브라질 용병 3총사는 경기 전 미리 골세리머니를 준비하고 나온다. 덕분에 팬들은 득점도 기다리는 동시에 골세리머니도 기대하면서 경기를 보게 되었다.

부산의 마니치도 골세리머니에 관해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 축에 낀다. 성남과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자 느닷없이 벤치로 달려와 팀 닥터의 핸드폰을 가로채 전화 거는 세리머니로 관중들의 눈을 즐겁게 한 사례가 있다.

국내 선수들은 어떨까. 조금은 해외파 용병들에 비해 농도(?)가 떨어질 지 모르지만 득점하는 그 순간 만큼은 월드컵에서 득점한 한국 선수 못지않는다.

대부분 양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질주하거나 선수들과 엉겨서 기쁨을 함께 나누곤 한다.

좀 독특한 골 뒤풀이를 하다 경고를 받은 케이스가 있다. 포항 이동국이 전남과의 경기에서 절묘한 헤딩 골을 넣은 뒤 코너 부근에 있는 깃대를 이단 옆차기로 넘어뜨리며 기뻐했는데… 주심으로부터 바로 경고를 받고 머쓱해 한 경우도 있다.

‘앙팡테리블’ 고종수는 트레이드 마크인 ‘고종수존’에서 프리킥으로 화려한 복귀 신고식을 했다. 득점에 성공한 후 공중으로 점프, 양 팔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부상으로 인한 대표 탈락과 고종수는 한 물 갔다라는 주변 시각을 한방에 날린 순간이었기에 기쁨은 더 했을 것이다.

축구 팬이라면 예전에 고선수가 득점에 성공한 후 어떤 골세리머니를 하는 지 기억한다. 바로 텀블링이다. 지금은 허리에 부담이 간다는 지적에 하지 않고 있지만 극적인 순간 골을 넣고 텀블링을 하는 고선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에 반해 골세리머니를 안 하기로 유명한 선수도 있다. 일본의 축구스타 나카타 히데토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그가 골을 넣은 모습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참 머쓱해 한다. 지난 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의 한 선수가 득점을 한 후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를 내니 나카타가 “아까운 체력을 낭비하지 말라” 며 꾸짖었다는 일화가 있기도 했다.

잠시 이야기를 딴 데로 돌리면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찍는 사진 기자들이 가장 촬영하기 어려운 선수가 있다. 누굴까.

바로 기도하는 선수다. 골을 넣은 후 사진기자들 쪽으로 달려가야 그럴듯한 사진이 나오는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자기가 맡은 바 소임(?)을 한다.

그러면 불과 몇 초 만에 동료들이 달려들게 되고 주인공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된다. 송종국, 최태욱 같은 선수가 신앙심(?)이 깊어 골을 넣은 그 즉시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는 케이스로 손꼽힌다.

스포츠 사진이라 함은 양 팔을 벌리고 기쁨에 겨운 포효하는 사진 등 역동적인 사진이 연상되기 마련인데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은 너무 얌전해 사진기자들이 포착하는데 애를 먹는 다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프로 선수들은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에게 재미를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 시점에서 당장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골세리머니’다.

K리그는 월드컵 후풍과 인기 스타들의 신드롬, 공격적인 축구로 매일 관중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거기에 발 맞추어 선수들도 멋진 플레이로 보답하고 또 멋진 골세리머니로 흥을 돋구고 있다.

161골이 터진 이번 월드컵에서 안정환의 오노 골세리머니나, 나이지리아 아가호아의 7회전 텀블링, 세네갈이 개막전에서 보여준 아프리카 전통 댄스, 아일랜드의 로비 킨의 앞 구르기 후 어설픈 활 쏘기 제스처 등도 K리그에서 언제든 볼 수 있기 기대해 본다.

K리그는 월드컵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경기, 멋진 골세리머니를 볼 수 있는 무한한 잠재 능력을 가진 리그가 되기까지 선수와 관중, 우리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Joins 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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