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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칼럼

너도나도 새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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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여기저기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밀레의 ‘만종(晩鐘)’이 아니라 쩌렁쩌렁한 새벽 종소리다. 너도나도 새마을운동에 뛰어들면서 나는 소리다. 어떻게 하면 새마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을까, 부처·기관 업무에 새마을 모자를 씌워 볼까 궁리하는 세태의 배경음이다.

 조짐은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있었다. 일부 인수위원이 “제2의 새마을운동을 펼치겠다” “사회적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국내 새마을운동 확대가 공연한 정치적 논란만 부를 듯하자 초점이 해외 새마을운동으로 옮겨졌다. ‘새마을운동 세계화사업’ 내지 ‘국제 새마을사업’이다. 종 치기 좋은 마당은 정부개발원조(ODA) 예산. 중앙부처·지자체 등 32개 기관의 올해 ODA 예산은 약 2조411억원이다. 이 중 기획재정부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54.2%,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예산이 35.2%를 차지한다. 그동안 ‘새마을운동’을 전면에 내걸고 해외에서 뛴 기관은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경상북도 정도였다. 요즘은 달라졌다. 문전성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미얀마에서 한·미얀마 경제협력공동위원회를 열고 EDCF 자금을 풀어 미얀마 지역경제 개발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기재부는 이를 ‘신개념 새마을운동’이라 이름 붙였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KOICA의 김영목 이사장은 5월 취임식 때 “개도국 현실에 맞는 특화된 새마을운동을 수출하겠다”고 공언했다. KOICA는 지난달 19일에는 경상북도와 국제 새마을사업에 협력한다는 내용의 업무협조 약정을 체결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나섰다. ‘개도국 식량안보를 위한 농업정책 컨설팅사업(KAPEX)’이란 이름 아래 개발도상국에 새마을운동 경험 등을 전수하기로 했다. 새마을운동 연구 경험이 풍부한 영남대는 제철을 맞았다. KOICA·농촌진흥청·농촌경제연구원·KOTRA 등과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위한 업무협력 약정을 차례로 맺었다. 교육부로부터 새마을운동 분야 국제개발협력 선도대학으로 선정돼 국비 지원도 받게 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성공한 국민운동이다. 비교적 비판적인 학자도 ‘농촌 근대화와 대중 동원의 성공적 사례’(김영미, 『그들의 새마을운동』)라고 인정한다. 요즘은 전 세계 농촌 개발의 모델로 평가받는다. 유엔이 아프리카 빈곤 퇴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택했고,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사회(ESCAP)도 라오스·네팔·캄보디아에서 새마을운동을 폈다. 해외 74개국으로 수출된 글로벌 상품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그런 명품을 전 세계로 널리 널리 전파하자는데 웬 잔소리냐고?

 일각의 우려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새마을이 아니던 게 다투어 새마을 옷을 입겠다는 데는 다 사연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사 뻔하다. 쩍 하면 입맛이고 툭 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다. 원래 새마을운동의 출발은 ODA가 아니었고, 지금도 ODA 속의 특수한 분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ODA가 새마을화(化)하는 현상은 아무래도 정치적 이해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역적으로는 경상북도와 영남대에 과도하게 쏠리는 게 걱정이다. 2005년부터 열심히 새마을운동 세계화 사업을 벌여 온 경북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현 정부의 숨은 실세로 불리는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의 덕이 크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복숭아·오얏나무는 잠자코 있어도 꽃과 열매 때문에 사람들이 절로 찾아들게 마련이다. 아무리 숨어 있어도 사람들은 실세 냄새를 용케 맡고 접근하는 법이다.

 너도나도 새벽종을 치다 보니 우리나라 해외 원조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된 분절화·파편화 현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해외에서 국내 기관들이 사전 조율도 없이 중복되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총리실에 조정기구가 있지만 유명무실해 보인다. 새마을운동을 이론화·체계화하고 현대화·현지화하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작업은 생색이 나지 않으니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벌써 새마을운동이 5년 후 4대강·한식세계화 사업의 재판(再版)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사업 전반을 면밀히 살펴 알차게 끌고 가야 한다. 기관들이 저마다 새마을 모자 쓰고 나대는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가 나서서 조정 기능을 발휘하라. 새마을은 대한민국 브랜드다. 5년 아니라 10년, 50년을 내다보고 제대로 키우고 가꿔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