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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운전대만 잡으면 전투모드, 혹시 반칙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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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대학교 때 스승님이 자기가 고등학교 시절 럭비선수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술자리에서 인생살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길 하실 때였다. 고3이 되면서 대학입시를 위해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너만 살겠다는 거냐며 동료들에게 호된 기합을 받고 며칠 동안 아파서 고생을 하셨단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서로 끈끈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은 역시 그 시절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이라 하셨다. 끝에는 자식을 낳으면 공부보다 운동을 가르치라고 덧붙이셨다. 공부는 혼자 하는 거지만, 운동은 함께 하는 거라는 점에서였다. 그래서 운동도 단체운동이어야 하고, 운동을 통해서 규칙을 지키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을 배우게 하라셨다.

 스승님 말씀대로 나도 한번 해봤다. 마흔 중반에 얻은 늦둥이를 강하게 키울 생각에서 초등학교 축구팀에 넣었다. 녀석이 덩치도 크고 규칙을 잘 지켰지만, 날 닮아 운동신경은 별로였다. 여러 학교 팀들이 모이고 부모들도 참석하는 시합이 종종 있었다. 내 아이가 멋진 공격수였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후보였다. 교체해 주면 들어가서 열심히 뛰는데, 오래 가지 않아 다시 교체되곤 했다.

집으로 오면서 엉엉 우는 아이에게 잘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고, 같이 노력했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도 해주었다. 하지만 녀석의 서운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 갔다. 그 후, 엄마가 정해준 학원 스케줄에 쫓겨 축구를 그만두긴 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만큼은 배운 것 같았다.

 공동체 정신이 필요한 때다. 사회 여기저기서 반칙도 많이 일어난다. 나눔과 배려와 상생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식이 필요한 때라는 말이다. 나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앞만 보고 달려야만 했던 산업화 시대에 우리는 경쟁과 이기적인 가치에만 너무 집착해왔다. 이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위도 둘러보고, 쫓기는 자신의 모습도 한번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다. 경쟁이나 이기심보다 상생과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생각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단체 운동 얘기를 한 것은 그래서다. 반칙하지 말자는 것, 팀을 위해서 희생할 수도 있다는 것, 동료들과 힘을 모은다는 것. 이런 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생활 속의 작은 일부터 사회적인 큰일까지 이런 생각을 새겨야 할 곳이 많다. 공동주택의 층간 소음 문제, 지하철 안에서 남을 아랑곳하지 않는 행위, 음식점에서 뛰는 아이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부모, 운전할 때면 양보를 모르는 전투모드(?)가 되는 것. 모두 나만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누굴 탓하고 가르쳐서 될 일이라기보다 생활 습관으로 익혀야 할 일인 것 같다. 자기 수양이나 생활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일이다.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스스로 노력하고 가정과 주변에서부터 공동 사회를 위한 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하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도 있다. 자기 아이만을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삐뚤어진 의식과 교육자들의 비양심적 행위가 합쳐 입시 비리라는 반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원전 비리로 더운 여름을 더 덥게 만든 사람들, 대리점에 물건 떠넘기기로 이익을 챙기는 기업들이 우리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이름도 해괴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이들이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사회적인 이기적 행위이다.

 이런 일들은 사회정의에 해당하는 문제다. 개인 수양이나 생활 방식의 변화로는 안 되며,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고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것 같다. 사회 정의가 바로 서야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공감대도 생기고, 신나고 향기 있는 삶을 살아볼 것 아닌가.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 필자는 서울대 미학과, 동대학원 졸업(철학박사), 대전시립미술관장, 2008서울 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총감독 역임. 저서 『문화와 미술』 『예술의 길 문화의 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