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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만 하나인 도·농 통합시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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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전남 여수시청에 볼 일이 있을 때는 해당 부서를 철저히 확인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1998년 4월 여수시·여천시·여천군 등 삼려(三麗) 통합 이후 4년 10개월이 흘렀건만 부서들이 옛 청사에 그대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도(都)·농(農) 통합이 이뤄진 지 긴 곳은 8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상당수 통합 시가 지역주의에 발이 묶여 복수 청사(廳舍)체제를 못 벗어나고 있다.95년 1월부터 생긴 통합 시는 전국적으로 40개.이 중 12곳이 옛 시·군청 건물 모두를 청사로 쓰고 있다.

특히 여수시는 청사가 3개나 된다.학동 1청사(옛 여천시청)에는 자치행정국·기획재정국·도시건설국 등의 부서에 6백여명이,여서동 2청사(옛 여수시청)에는 환경복지국·경제농수산국 등의 부서에 5백여명이 근무 중이다.

돌산읍 옛 여천군청인 3청사에도 도서복지과 직원 8명이 일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2청사에서 4㎞ 떨어진 1청사까지는 차로 10분 가량,6㎞ 떨어진 3청사는 15분 넘게 차를 타야 한다.1청사 직원 김종부씨 “청사 간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다니지만 기다릴 수 없어 내 차로 오간다”며 불편을 하소연했다.

시장·부시장도 주중 절반은 1청사로,절반은 2청사로 출근한다.실·국장들은 간부회의를 하러 매일 시장·부시장이 근무하는 청사로 왔다갔다 한다.의회가 열리면 1,3청사 직원들은 의회가 있는 2청사에 오느라 업무를 제대로 못 본다.

이개호(44) 여수 부시장은 “행정구역만 합쳤을뿐 시민 정서는 여전히 갈라져 있다”며 “청사 단일화는 시민들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시청사를 한 곳으로 합치자면 그 위치를 놓고 지역 간에 큰 분란이 벌어질 것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김대희(34) 여수YMCA 시민사업부장은 “아직은 청사 단일화를 공론화해 갈등을 겪기보다는 청사 분산의 폐해를 감수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된 구미시도 옛 군 청사를 선산출장소로 운용 중이다.16㎞나 떨어진 데다 인구 2만의 선산읍을 더 이상 쇄락시키지 않기 위해 출장소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다.구미시가 본래 선산군 구미면이 커진 것인데 선산군이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가느냐는 ‘자존심’도 작용하고 있다.

김경배(56) 선산출장소장은 “현재로서는 출장소 폐지를 고려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경우 금곡동 옛 미금시청을 1청사로,6㎞ 떨어진 지금동 옛 남양주군청을 2청사로 사용 중이다.청사관리 담당자는 “통합 당시 여건이 조성되면 한 곳으로 합치기로 했는데 아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그렇다”고 밝혔다.

이처럼 청사가 분산돼 있음에 따라 시민과 공무원의 불편은 물론 행정 효율의 저하와 예산·인력 낭비도 적지 않다.

청사가 둘인 통합 시들은 대부분 양쪽에 시장실·부시장실을 두고 여직원들도 각각 배치하고 있다.

통합 이래 9년째 14㎞나 떨어진 옛 동광양시청과 옛 광양군청을 각각 1,2청사로 쓰는 전남 광양시 장석영(49) 의원은 “청사를 합치면 청소비·전기세 등을 14억원 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대 신원형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주의가 팽배한 데다 자치단체장들이 차기 선거를 의식해 눈치를 보느라 청사 통합이 안되고 있다”며 “청사가 폐쇄되는 곳의 상권 위축에 따른 대책을 세우고 주민들의 심리적 박탈감을 보상할 시스템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청사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의호·이해석·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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