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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7년 내 개발 여부가 성공 좌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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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11면

달 탐사의 첫걸음은 ‘발사체 개발’이지만 7년 만에 가능할지 걱정이 나온다. 사진은 한국 발사체의 상상도.[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박근혜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한국형 발사체에 의한 2020년 달 탐사’가 목표에 맞춰 가능할 것인가. 지난 6월 ‘조기 탐사 계획’을 마련한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대답은 물론 “그렇다”지만 학계에선 논쟁이 일고 있다. 이를 짚어본다.

‘2020 달 탐사’ 실현 가능성 논란

2020년 전라남도 고흥의 우주센터. 무게 200t, 길이 47.5m, 최대 직경 3.3m인 한국형 발사체가 서서히 치솟는다. 액체연료를 꽉 채운 은백색 동체에 KSLV-II라는 이름과 태극마크가 선명하다. 1단의 4개 엔진이 뿜는 불꽃이 맹렬해지면서 발사체는 중력 탈출 속도인 초속 11㎞로 가속돼 수직 상승한다. 곧 1단이 분리되고 이어 2·3단도 떨어진다. 약 90초 후 고도 300㎞ 상공에 2.9t 무게인 4단이 도착했다. 4단엔 탐사선과 소형 추진 로켓이 들어 있다. 로켓이 분사하면서 추력이 생기고 위성을 실은 탐사선은 달로 방향을 잡는다. 이렇게 되면 이날은 한국의 독자 발사체로 달 탐사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7년 뒤로 설정한 ‘독자적 달 탐사’ 목표를 달성하는 첫출발은 한국의 힘으로 300㎞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90초~2분에 걸린 승패’다. 아리랑 위성은 680㎞까지 올라가고 고도 3만6000㎞ 정지궤도를 도는 무궁화·천리안 위성은 1500㎞까지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실려 올라갔지만 지구 중력을 추력으로 이용하게 될 달 탐사선은 300㎞ 천이궤도까지만 가면 된다. 그래서 발사체 개발이 최우선 과제다.

항우硏, MB정부 때 일정보다 5년 앞당겨
정부는 이를 위해 ‘한국형 발사체 사업계획’을 새로 짰다. 이명박정부 때 확정된 계획은 75t급 액체 엔진 4개를 묶어 1단을 만들고 그위 2단엔 75t 엔진 1개를, 3단엔 7t짜리 액체 엔진을 얹는 것이다. 여기에 탐사선을 실은 4단이 실린다. 지난 1월 30일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 때처럼 엔진 추력이 170t이면 2단으로 되지만 한국형 엔진은 ‘힘이 약해’ 3단이 필요하다. 발사체 개발 예산은 1조5449억원. 일정은 1단계 2011년 8월~2015년 7월(4년), 2단계 2015년 8월~2019년 7월(4년), 3단계 2019년 8월~2021년 7월(2년)이다. 1·2단계에서 5~10t급과 75t급 엔진 개발을 하고 2020년 10월엔 1차, 2021년 9월엔 2차 발사 시험을 한다.

이 계획에 따르면 독자 발사체에 의한 달 탐사는 빨라도 2022년 이후 가능하다. 국내 우주 분야의 한 관계자는 “발사체가 성공해도 달 탐사는 3~4년 뒤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명박정부는 2025년 달 탐사를 계획했다. 그런데 지난 6월 미래부와 항우연이 만든 새 계획은 ‘2020년 달 탐사를 하며 발사체를 조기 개발한다’는 내용이 됐다. 5년이나 앞당긴 의욕적 계획이다.
문제는 달 탐사 같은 대형 복합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돈·시간·전문인력·인프라 등 4개 요소가 필요한데 ‘우주 환경’이 척박한 한국에서 마른 수건 짜듯 일정을 조이는 게 가능하냐는 점이다. 항우연 내부와 우주학계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사업 주체인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단의 박태학 단장은 “물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13t·30t 액체 엔진을 개발했고 30t은 파워팩 실험을 포함한 성능시험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제를 모델로 개발 중인 75t 엔진까지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항우연 관계자는 “이 엔진을 개발했지만 축조 실험밖에 못했다”고 말했다. 엔진의 핵심 기관인 연소기, 가스발생기, 터보펌프를 연계해 실험해야 하는데 한국엔 실험실이 없어 러시아에서 이를 따로따로 ‘축조 실험’만 했다는 것이다.
박 단장과 항우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실험 뒤 국내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75t으로 가도 되는지’를 주제로 회의를 했다. 결론은 OK였고 곧 예비 설계에 돌입해 현재 부품이 생산되고 있다. 2015년 시험 시설도 완공돼 2월엔 7t 엔진, 6월엔 75t 엔진을 시험하며 2016년엔 4개 엔진을 다 묶은 1단을 시험한다. 200회의 반복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재단의 우주 단장을 지낸 장영근 한국항공대학 항공우주학과 교수는 “조기 달 탐사를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선 액체 로켓 엔진 기술이 한국엔 부족하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발사 직후 폭발한 러시아의 프로톤-M 발사체도 2년간 다섯 번이나 실패했는데 한국형 엔진도 러시아제를 토대로 개발한다고 지적한다. 다음은 각종 실험의 장벽이다. 엔진용 연소기 실험, 터보펌프와 연소기를 묶는 실험 등 끊임이 없다. 75t 엔진을 1단용으로 4개씩 묶는 클러스터링 기술, 발사체를 1·2·3단으로 묶는 기술 모두 어렵다. 종합 발사 실험은 어려움 종결자다. 장 교수는 “50년이나 로켓 엔진을 개발한 러시아에서도 발사체가 나오기까지는 8~9년 걸린다”며 “한국은 최소 12~14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기초기술 부족  외국서 배우기도 힘들어
박 단장은 “얼마만큼의 실험 실패를 받아들일지를 알려주는 안전계수를 보통 20~30%로 잡지만 우린 계상하지 않을 만큼”이라며 “실험에 실패하면 초과근무를 하고 실패 원인도 빨리 분석해 계획에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장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미 항공우주국(NASA) 자료엔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일정과 예산이 더 들어가는 사업이 80%”라고 덧붙였다. 한국형 개발의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시사하는 말이다. 항우연 관계자는 “연구원 엔지니어들도 시간 부족 문제를 지적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한국의 우주사업 환경은 아주 척박해 긴급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장 교수는 “한국은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무엇이며 기술 성숙도가 어느 정도인지 분석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술 수입도 힘들다. 박 단장은 “미국은 안 주고 일본은 미국 눈치를 본다. 중국도 눈치를 보며 중국과 러시아한테 기술을 받은 인도도 그렇다. 유럽은 돈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고 말한다. 인력도 부족하다. 한국의 우주분야 전문인력은 800여 명인데 일본은 2000명, 미국은 1만 명이 넘는다. 중국은 수십만. 러시아도 1만 명을 상회한다. 2007년 과학기술부는 액체 로켓 관련 연구원 3명을 NASA에서 찾았지만 치명적 군사기술이란 이유로 초청할 수 없었다. 다른 장애물도 많다. 우선 예산과 관련해 항우연 김승조 원장은 “예산이 많아야 된다고 하면 사업 자체가 없어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2014년 4000억원 예산이 필요하지만 3000억원만 신청됐다. 그는 또 “경제성만 따지는 논리도 문제”라고 말한다. 정부가 바뀌면 사업의 경제성을 따질 정치권도 문제다.
이에 따라 장 교수는 “2020년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박 단장은 “일정이 빡빡하지만 목표가 느슨하면 안 된다. 현재 한국의 발사체 진도가 주변국에 비해 뒤지므로 빨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원장도 “미국의 민간회사인 스페이스X가 우리 엔진과 유사한 로켓 엔진 실험에 성공하고 있다. 잘못하면 타이밍이 늦어진다. 2020년 발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곧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사업 적정성 평가를 받는다. 항우연 관계자는 “평가 주체가 개발을 해보지도 않은 교수들이 주축이라는 점에서 부담”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이를 거쳐야 9~10월 국가우주위원회가 사업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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