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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한·일 관계, ‘밀당’ 묘수 찾을 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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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호 31면

“지금의 일본 외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즈음 사석에서 만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가 솔직한 답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그건 한국의 착각”이라고 ‘도발’을 시작한 그는 “일본은 실로 오랜만에 안정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총리를 맞았다. 국정 전반에서 일관된 정책 방향을 펼칠 수 있다. 도쿄의 외무성 동료들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베테랑 외교관인 그는 “한·중·일 관계에서 일본이 고립됐다지만 우리에겐 미국이 있다. 미·일 관계가 좋으면 일본은 아쉬울 게 없다. 중국과 한국이 지금 밀월관계라고들 하는데, 한국이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주한 일본인들에게 일제히 훈령이라도 내린 걸까. 일본 유력 일간지의 서울특파원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보도에 대해 “지극히 의례적인 말인데 마치 ‘일본이 한국에 매달린다’는 것처럼 과장됐다”며 “도쿄 분위기는 냉랭하다. 한·일 정상회담도 무리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한술 더 떠 개성공단 관련 남북회담을 놓고 한국이 “회담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원칙을 지킨다는 자세가 통했다”는 중앙일보 기사를 보이며 “여기에서 한국을 일본으로, 북한을 한국으로 바꿔서 보면 딱 맞다”고 말했다. “너희가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아쉬울 것 없다”는 거였다. 따돌림을 당할 것 같으니 “내가 너희들을 왕따시키는 것”이라는 토라진 아이의 궤변처럼 들린다.

 정작 아쉬울 게 없는 건 우리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일본이 수세에 몰린 건 확실하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지속될 경우 한·일 정상회담을 굳이 할 필요 없다는 대통령 의지도 확고하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서도 호재는 찾기 어렵다. 9일 발표 예정인 일본 방위백서는 여전히 독도를 자국 영토라 주장할 것이고 21일에 열릴 참의원 선거에선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는 5일엔 안중근 의사 저격으로 사망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두고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을 (한·일이)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말해 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 측 정부 관계자는 “양국 간 캘린더가 비교적 잠잠한 하반기를 넘긴다면 내년 넘어 정상회담 공백기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후 다섯 달 가까이 양국 외교장관 간 만남만 겨우 한 번 열린 상황은 비정상이다. 밀고 당기기를 해온 한·일이 이젠 밀고 당길 끈을 아예 손에서 놓아버린 모양새다. 위의 일본 외교관 말에서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한국이 지나치게 순진한 게 아닌가 싶다”는 말이다. 가깝지만 먼 이웃인 한·일이 영영 멀어지면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 수면 아래에서는 바삐 계산기를 두드리고 다음 묘수를 계획할 때다. 외교가 ‘밀고 당기기’의 예술임은 양국 외교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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