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싸워 이길 사람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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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업저버=본사독점게재] 「해럴드·윌슨」영국수상은『언론기관과 싸워서 절대 이길수 없다』고 지난5월 한「텔리비젼」회견에서 실토했다. 수상이 언론에 관해 공공연하게 예리한 언급을 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윌슨」수상이 언론계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인가.
첫째「윌슨」수상은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이와같은 관계가 있다고 할 것이고, 둘째로 수상은 언론기관이 자기를 어떻게 취급하는가에 분명히 신경과민이 되어 있다.
「윌슨」수상은 잔뜩 화를 낸 일이 있었다.「타임즈」지는 각각 다른 날짜의 지면에 수상과, 또 수상과 불화중에 있었던 보수당소속「엘든·그리프즈」하원의원에 관한 기사를 실은적이 있는데, 수상에 관한 기사는 겨우 3단 밖에 안되었는데「그리프즈」의원에 관한 것은 5단으로 났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언론기관의 관계는 잘 조화되기 힘드는 일이어서 역대수상들은 언론기관과 많이 맞서 왔으나「윌슨」수상은 지나칠 정도로 언론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BBC(영국방송협회)등 영국언론기관이나 이들외 비판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지나칠 정도여서 민주국가의 수상으로서의 성격상약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펀치」지(만화가 많은 영국의 주간지)나「크리켓」전적정도 읽어치우던「애틀리」씨등 전임수상과는 달리「윌슨」수상이 이처럼 언론에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그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은 그가 기자가 될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37년 21세되던해 청년「윌슨」은 「옥스퍼드」대학의 지도교수의 추천으로「맨치스터·가디언」지의 논설위원으로 일해보겠다고 동지의 주간「W·P·크로지어」씨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크로지어」씨와 한참 상담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윌슨」군은 이미 신청해 놓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연구실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 인연으로「윌슨」수상은「가디언」지와 오래 사이가 좋았고 50년대 야당생활을 할 때「맨치스터」에 갈때마다 편집국에 전화를 걸고 아무기자나 불러내 같이 술을 마시며 만일 정치인이 안되었다면 단하나 바라는 직업은「가디언」지에서 일하는 것이었다고 자주 말했다.
언론기관과「허니문」을 즐겨오게된 동기를 이와같이「윌슨」수상은 옛날을 회상하며「텔리비젼」에서 털어 놓았다. 그러나 언론과의 「신혼여행」1966년을 고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63년 2월부터 수상이 되던 64년10월사이는 그와 언론기관의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였다.
이때 기자들과 친밀하게 지내 부재중에 전화하면 부인이 받아「메모」해놓고 후에 그가 전화를 걸 정도였으니까. 기자들과 함께 기차로 여행할때도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인물로통하고.『전날 전화걸려고 했어. 기사잘썼더군. 핵심을 파악한 사람은 당신뿐이었소』라는 전화대화를 기자들은 그와 자주 나누었다.
그러나 수상으로서 가장 주요한 목표인 국내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되자 가까웠던「윌슨」수상과 언론기관의 사이는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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