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세르 이후 61년 만의 '군 거사' … 설계자 알시시 권력 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축출됨으로써 향후 이집트 권력의 향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무르시의 권한 박탈을 발표한 압델 파타 알시시(59) 국방장관이 현재로선 가장 큰 실세다. 알시시 장관은 1954년생이다. 그해 11월 14일 이집트 혁명위원장 겸 총리였던 자말 나세르는 혁명위원회 결의를 빌려 무함마드 나기르 대통령을 해임했다. 52년 자유장교단을 이끌고 왕정에 대항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지 2년 만이었다. 나세르 쿠데타 이후 61년 만에 이집트 역사상 두 번째 군부 쿠데타가 알시시의 손으로 빚어졌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알시시 장관은 지난해 8월 무르시 대통령에 의해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출신인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군부 출신이지만 무르시 대통령이 속한 무슬림형제단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군부와 이슬람 정권 간의 새로운 연대를 전망하는 시각이 많았다. 지난해 말 이른바 ‘파라오 헌법’을 둘러싼 군부와 이슬람 정권의 갈등 때도 협상을 시도했지만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번 쿠데타 직전까지 무르시 대통령과 벼랑 끝 타협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집트 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알시시는 영국과 미국에서 전쟁·군사학을 공부한 유학파다. 군 정보 분야에서 이력을 쌓았고, 미군과의 교류를 통한 이집트군 현대화에 관심이 많았다. 정통 군 엘리트로서 알시시는 나세르로부터 이어지는 군부에 명예와 자부심이 강한 인물이다. 이집트 경제의 상당 부분(수익 및 보유자산 15~40% 추정)을 차지한 군부는 오랜 무바라크 독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지 않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카이로 시민혁명 이후 ‘군부 타도’ 같은 슬로건이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회자됐다. 알시시는 쿠데타를 통해 군부의 명예회복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이번 쿠데타는 표면적으로 군부가 시민혁명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2년 전 무바라크 정권 축출 때와 닮았지만 면면에선 크게 달라졌다. 군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임시 대통령을 세웠다. 지난 1일 헌법재판소 소장에 임명된 아들리 만수르(67)다. 군부가 쿠데타 이전에 사법부와 사전 교감을 했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만수르 대통령은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관리형 지도자로 그칠 전망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만수르의 역할이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 무바라크가 뒤를 잇기까지 8일 동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수피 아부 탈레브와 유사할 것”이라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타렉 마수드 부교수의 말을 전했다.

 알시시 장관의 TV 연설은 쿠데타이면서도 세속·자유주의 세력과 종교계 지도자들이 함께함으로써 ‘민의의 반영’으로 보이게 애썼다. 이들은 군부와 물밑 조율 속에 향후 권력 분점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가장 주목받는 이는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1)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다. 200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무바라크 축출 때도 야권을 통합하는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번 정국에서도 개헌을 통한 조기 대선·총선을 주창한 야권의 연합대표로 선출됐다.

 군부의 등장이 지난 대선에서 무르시와 결선을 다퉜던 아흐메드 샤피크(71)를 복귀시킬 수 있다. 무바라크의 최측근이었던 샤피크는 대선 패배 후 아랍에미리트(UAE)에 체류하고 있다. 무르시 정권에 의해 부패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공군 장교 출신의 정치인 함딘 사바히(72), 아랍연맹 사무총장이자 외교장관 출신인 아므르 무사(77), 온건 성향의 이슬람 학자이자 변호사인 셀림 알 아와(70) 등도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는다.

강혜란 기자

관련기사
▶ 국민이 원한 건 코란 아닌 빵…아랍의 봄 다시 표류
▶ 실권한 무슬림형제단 군부와 지하드 벌일까
▶ 무슬림형제단 오늘 대규모 반쿠데타 시위
▶ 민심 살피며 치밀한 물밑 작업 '준비된 쿠데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