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살피며 치밀한 물밑 작업 ‘준비된 쿠데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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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군부가 1년 만에 권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격적으로 감행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체포 작전을 통해서다. 매년 15억 달러의 경제 원조를 제공하는 미국의 재가 없이 군부 쿠데타는 불가능하다는 통설도 깨졌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이집트 군부가 1일 무력 개입을 선포하자 이집트 합참의장에게 “미국 법률은 군부가 헌법을 어기고 정변에 개입하는 나라에는 군사 원조를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환기시켰지만 허사였다.

 군부의 무르시 축출은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됐고, 민심의 향방을 좇은 행동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8월 무르시가 국방수비대 피살 사건을 구실 삼아 군부 실세였던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60년간 이어온 사실상의 군정을 종식시킬 때만 해도 군부는 침묵을 지켰다. 군부가 2011년 2월 시민혁명으로 실각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잔당이란 인식과 무바라크 퇴진 후 더딘 민주화 이행 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잃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정국이 어수선할 때마다 군부는 무력 개입을 시사하며 민심을 저울질해 왔다. 지난해 12월 새 헌법 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하자 “이집트가 어두운 터널로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무르시 시위가 거세지던 지난달 23일엔 성명을 내고 “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군부가 개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반무르시 민심이 절정으로 치닫자 이를 등에 업고 1일 무르시에게 48시간의 최후통첩을 한 후 쿠데타를 결행했다.

 쿠데타 직후 야권과 시민단체는 물론 알누르당, 알자마 알이슬라미야 등 여권과 가까운 이슬람 원리주의 정치세력들은 곧바로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과도정부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니파 무슬림의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알아자르 대학 총장으로부터도 지지를 끌어냈다. 이는 군부가 치밀하게 반무르시 세력을 규합해 왔음을 뒷받침한다.

 이집트에서는 1952년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로 파루크 왕조를 무너뜨린 이후 나기브-나세르-사다트-무바라크로 이어지는 군부 출신의 권력자가 60년간 통치해 왔다. 또다시 민주화혁명으로 탄생한 첫 민선 대통령인 무르시 축출에 성공한 군부는 직접 통치를 하기보다는 권력 창출의 기반으로서만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스티븐 쿡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이집트 군부는 통치(govern)하기보다 지배(rule)하는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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