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보다 낫다" 큰소리 뻥뻥…엔비디아 '1억 칩' 잡은 3위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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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를 맞아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 칩 ‘GB200’이 전시되어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를 맞아 대만 타이베이의 한 호텔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 칩 ‘GB200’이 전시되어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를 맞아 엔비디아는 차세대 인공지능(AI) 수퍼칩 ‘GB200’의 실제 양산 제품을 국내외 일부 취재진에 공개했다. GB200은 2개의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엔비디아가 자체 설계한 중앙처리장치(CPU) 한 개를 이어붙인 차세대 AI 가속기다.

올 연말부터 출시될 GB200의 가격은 개당 7만 달러(약 9698만원)를 넘는다. 우리 돈 1억 원에 달하지만 이마저도 없어서 못 산다. 업계 1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전 세계 서버 기업들은 칩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입도선매’에 들어갔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 칩 ‘GB200’을 구동하는 그레이스 CPU(중앙처리장치) 옆에 마이크론의 LPDDR5X 메모리 칩이 붙어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수퍼 칩 ‘GB200’을 구동하는 그레이스 CPU(중앙처리장치) 옆에 마이크론의 LPDDR5X 메모리 칩이 붙어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대부분 반도체 회사들은 칩에 로고를 각인해 자사 생산 칩임을 표시한다. 엔비디아는 이날 GB200의 GPU에 케이스를 덮어뒀고 올해 반도체 업계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의 공급사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칩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CPU와 메모리 반도체는 별다른 조치 없이 공개됐다. 엔비디아 칩의 옆자리를 꿰찬 주인공은 ‘D램 최강자’ 삼성전자도, ‘HBM 리더’ SK하이닉스도 아닌 미국 마이크론이었다.

‘D1b’ 마이크론 깜짝 선두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마이크론은 앞서 2022년 11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1β(베타) 공정을 적용해 LPDDR5X 개발을 마치고 고객사에 보낸다고 밝히며 반도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 한 세대 앞선 공정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이다. 첨단 D램 공정은 1x·1y·1z 세대를 넘어 최근 1a(α)·1b(β)·1c(γ)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D램은 HBM·DDR·LPDDR·GDDR 등 D램 기반의 메모리 반도체 제품으로 완성된다. 삼성은 올 하반기부터 1b 공정 기반의 LPDDR5X 양산에 돌입한다.

불붙은 D램 공정 경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테크인사이츠]

불붙은 D램 공정 경쟁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테크인사이츠]

엔비디아 GB200엔 AI 연산 기능을 담당하는 GPU를 돕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인 HBM이 총 16개, CPU 옆에는 LPDDR5X가 16개 붙는다. 모두 현존 최고 성능의 D램 제품들이다. 특히 저전력 특화 D램인 LPDDR5X는 엔비디아 GB200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서버에 장착되면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원래는 스마트폰과 같이 주로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메모리다.

당시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LPDDR5X는 애플 아이폰15 시리즈에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애플에 이어 이번엔 AI 선두주자 엔비디아까지, 마이크론이 잇따라 고성능 메모리 제품 공급에 성공한 셈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밀려 ‘만년 메모리 3인자’로 꼽혔던 마이크론은 올 1분기 D램 시장점유율 21.5%를 기록, 3사 중 유일하게 점유율을 늘리며 1·2위와의 격차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EUV 없고, 수율 낮아도 일단 달린다

5일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에서 프라빈 바이댜나탄 마이크론 부사장이 마이크론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5일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에서 프라빈 바이댜나탄 마이크론 부사장이 마이크론의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반도체 업계는 무엇보다 메모리 빅3 중 유일하게 첨단 D램 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 주목한다. 마이크론은 지난 2013년 일본 엘피다를 흡수한 이후 미국 본사에 위치한 연구소와 일본 연구소에 D램 공정을 번갈아 개발시키는 ‘지그재그’ 전략을 구사해왔다.

반도체 전문 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의 최정동 수석부사장은 “미국 연구소가 1·3세대 공정을 연구하면 그동안 일본 연구소는 2·4세대 공정을 맡는 식”이라며 “지난 5년 사이 개발 시간을 경쟁사 대비 절반 가까이 줄였다”고 분석한다.

업계에서는 실제 D램 성능을 좌우하는 집적도 측면에서 마이크론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확실히 앞섰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면서도, 적어도 메모리 3사의 선단 공정 기술 격차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본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량과 수율은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오히려 성능 자체만 보면 마이크론이 가장 앞선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HBM마저…“삼성보다 낫다” 큰 소리 뻥뻥

5일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에서 프라빈 바이댜나탄 마이크론 부사장이 “마이크론 HBM3E의 전력효율이 경쟁사 대비 최대 30% 좋다”고 언급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5일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컴퓨텍스2024에서 프라빈 바이댜나탄 마이크론 부사장이 “마이크론 HBM3E의 전력효율이 경쟁사 대비 최대 30% 좋다”고 언급하고 있다. 타이베이=이희권 기자

자신감을 얻은 마이크론은 이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90% 가까이 장악한 HBM 시장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프라빈 바이댜나탄 마이크론 부사장은 지난 5일 컴퓨텍스 2024에서 “자사 HBM3E 제품의 전력 효율이 경쟁사 대비 최대 30% 좋다”며 사실상 삼성과 SK하이닉스를 겨냥했다.

특히 유일한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라는 점과 대만·일본에도 공장이 있어 주요 고객사와 밀착 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 배경도 장점으로 꼽힌다. 마이크론은 올해 대만 타이중 신규 공장 투자에 이어 미국 정부로부터 8조4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아 공장을 추가 신설한다. 현재 HBM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수인 상황에서도 “2025년까지 점유율을 25%로 끌어 올리겠다”고 큰소리 친 자신감의 배경이다.

‘메모리 킹’ 삼성의 방어전

전영현 삼성전자 신임 DS부문장(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전영현 삼성전자 신임 DS부문장(부회장). 사진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빠르게 치고 나오는 사이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의 D램 리더십이 1a 공정을 기점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처음부터 추격자의 입장에서 시작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과 달리 D램은 지난 30년간 선두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삼성 반도체의 주력이자 핵심, 초격차의 상징이다.

지난달 삼성 반도체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전영현 신임 DS부문장(부회장) 역시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삼성의 D램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근원에 해당하는 D램 공정 경쟁력부터 뒤처진다면 HBM은 물론 DDR·LPDDR·GDDR 등 D램 기반의 AI 메모리 전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에 삼성전자는 최근 내부에 TF를 만들어 1b 공정 이후 개발에서 생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1b 양산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순부터 반도체 부문을 포함한 주요 경영진과 해외법인장 등이 참석하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 등 후발주자가 최근 도박에 가까운 공격적인 전략을 펴며 승부를 걸어오고 있다”면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D램 경쟁력을 철저하게 점검해 격차를 다시 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SK하이닉스로부터 반도체 관련 특허를 넘겨받은 특허관리기업(NPE) 미미르IP는 지난 3일 미국 텍사스 동부지방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마이크론과 마이크론 제품을 사용한 테슬라·델·HP·레노버 등을 특허침해 혐의로 제소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마이크론에 이직한 자사의 HBM 담당 연구원에 대해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메모리 업계의 경쟁격화에 따라 기술 유출에 대한 경계도 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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