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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지왕 미스터리 … 경주 금관총의 주인 밝혀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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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주 신라시대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環頭大刀). 위는 국립중앙박물관, 아래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신라시대 고분 금관총(金冠塚). 무덤에서 금관이 출토돼 ‘금관총’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무덤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 나온 칼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처음 확인됐다. 그 동안 미스터리에 싸여 있던 금관총의 주인을 밝힐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3일 1921년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環頭大刀·둥근고리갖춤 쇠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칼의 손잡이 부분에 있는 명문(銘文)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칼집 하단 앞·뒷면에는 ‘斯智王(이사지왕)’과 ‘十(십)’이라는 글자가, 자루와 만나는 지점의 칼집 상단에는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박물관 측은 금관총 출토 또다른 환두대도(경주박물관 소장)에서도 ‘(이)’ ‘八(팔)’ ‘十(십)’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6세기 이전에 조성된 신라시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유물에서 왕 이름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칼의 칼집 하단에 ‘이사지왕(?斯智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왕일까 귀족일까=지증왕 4년(503년)에 ‘왕(王)’이라는 칭호가 도입되기 전까지 신라의 최고 지도자는 왕 대신 ‘마립간(麻立干)’이라는 칭호를 썼다. 금관총은 금관이 출토됐다는 이유로 그 동안 마립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어 왔다.

 칼에 새겨진 ‘이사지왕’이라는 인물이 금관총의 주인일 경우, 마립간인 내물왕~지증왕 중 한 사람의 왕명(王名)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신라시대 각종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마립간은 찾을 수 없었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따라서 이사지왕은 최고 지도자인 마립간이 아니라 고위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포항 냉수리에 있는 신라비(503년 건립)에 새겨진 ‘차칠왕등(此七王等·‘이 일곱 왕들’이라는 뜻)’ 문구 등, 당시에는 최고 지도자뿐 아니라 왕 아래에 있는 고위 귀족들까지 ‘왕’으로 불렸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신라사(史) 전문가인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이사지왕은 이 무덤의 주인으로 신라의 고위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금관총·천마총 등 지금까지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으로 추정한 연구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관총에서 여성용으로 보이는 귀걸이와 팔찌 등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보아 금관총의 주인은 여성이라는 설도 있다. 이 경우 이사지왕은 금관총에 묻힌 여성의 남편이거나 가족일 것이다.

 ◆왜 이제 밝혀졌나=금관총이 처음 공개된 것은 1921년이다. 주택 공사 중 유물이 나왔다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조선총독부가 관련 유물을 수습했다. 당시 봉분은 3분의 1 이상 무너진 상태였고, 내부도 심하게 훼손돼 유물의 정확한 발굴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최초로 금관이 나온 신라 고분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나 유물 정리와 보고서 작업은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독점됐다.

 그로부터 무려 92년이 흐른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발굴된 금관총 유물에 대한 조사·보존처리를 시작했다. 칼에 새겨진 글자 부분은 짙은 부식층(腐植層)으로 덮여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가 여러 차례 약품 처리를 거친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송의정 고고역사부장은 “앞으로 다른 신라 고분 유물도 차례로 조사할 예정이다. 비교 연구를 통해 금관총 주인의 신분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마립간(麻立干)=신라시대 왕의 칭호 중 하나. 제17대 내물왕부터 제22대 지증왕 4년에 중국식 왕호를 칭할 때까지 사용됐다. ‘마립’이란 말뚝을 의미하며, ‘간’은 몽골의 ‘칸’과 같이 왕이나 우두머리를 뜻한다. 궁궐 마당에서 왕의 말뚝이 가장 높은 곳에 놓여있었던 데서 ‘마립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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