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에 유도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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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 한국유도대표선수로 61년 세계유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한호산 5단(31)이 서독의 유도 대표선수단「코치」로 부임한지 벌써 8년.
한「코치」는「코치」로서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서독유도보급에도 공적이 많았다면서 근착「슈피겔」지는 한「코치」를 크게 칭찬했다.
노상강도가 길을 걷는 여자의「핸드·백」을 탈취하는 순간 재빨리 나타난 유도인이 노상강도를 때려 뉘인다는 내용의 TV「프로그램」은 최근수년간「베를린」「함부르크」「브레맨」등 어느 곳에서나 시청할 수 있었다.
불의의 습격에 대한 이 같은「자기방어」의 기술은 TV에「시리즈」로 나갈만했으며 그 결과 3백 여개의 유도학교가 세워졌고 등록선수만도 7만여명에 이르러 서독의 「유도」「붐」은 절정.
또한 72년「뮌헨·올림픽]의 유도에선 일본에 이어 2위, 선수도 15만 돌파를 낙관하고 있는데 이 같은 급진적인 유도발전은 무엇보다 한국 한호산5단의 대표「코치」부임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62년 한5단이「하노바」공대에 입학하자 현지의 유도학교는 「코치」로 위촉했는데 한5단의 높은 이론과 차분한 성격에 반한 「독일유도연맹」이 72년「뮌헨·올림픽」에 대비하여 훈련 중인 국가대표 선수단의「코치」로 추천하기에 이른 것.
이때 한5단은 선수단의 도일전지훈련을 제의하면서「코치」직을 사양했으나 연맹 측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월1천8백「마르크」(약13만5천원)의「코치」직을 수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코치」직에 취임하자마자『선수권의 길은 지옥길』이라는 연맹의 표어와 같이 피땀나는 맹훈련을 거듭, 5년만인 67년「유럽」선수권획득으로 첫 결과가 나타났고 72년의「올림픽」을 향해 훈련장의「매트」는 쉰 날이 없다.
그 동안 본국의 아버지로부터 사업체인수를 위해 귀국하라는 통고를 받았으나 귀국을 「뮌헨·올림픽」이후로 연기한바 있으며 불난서등의 끈질긴 유혹도 물리친 숨은 얘기도 있다.
한「코치」의 열성은 서독선수를 통해 숙적인 일본을 물리쳐 보겠다는 집념 때문에 더욱열성적인 것이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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