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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와 외국어의 혼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문교부는 16일 이른바「한글전용화계획에 따른 외래어 표기 5개 원칙」을 채택, 이것을 최종적인 것으로 확정지었다 한다. 이 원칙은 문교부내 국어심의회 외래어분과위가 만들어 문교부장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인데, 당국은 이 원칙에 따라 내년도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를 손질하고, 언론·출판기관에 대해서도 이 원칙의 준수를 종용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종래 우리 나라에서는 외래어 또는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아직까지도 통일된 원칙이 없어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언론출판물은 그것대로, 또 방송관계자는 그들대로의 표기 또는 발음을 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어차피 확정된 통일적인 원칙의 확립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 논의 여지가 없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래 문교부안, 한글학회안, 방송용어심의회안 등이 각기 난립하여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것은 그 하나 하나의 통일안이 언어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지켜야 할 기본적인 태도를 등한시하고 제각기 독선적·독단적 고집을 굽히지 않은 채 저마다 성급한 결론을 내기를 서두른 결과였음을 상기할 때, 이번 문교부의 5개 원칙이 아무 이의 없이 통일안으로서 받아들여질지는 극히 의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류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언어현상처럼 민주주의적인 법칙을 따르는 것은 따로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때, 문교부의 몇몇 외래어분과위원들이 모아서 작성한 시안을 널리 학계나 문화계의 공직에도 붙이지 않고서 조급하게 확정안으로 강요하려 한다면 이 표기원칙 역시 모든 국민이 승복하고 따를 수 있는 통일안이 될 수는 없을 것임을 우리는 우려한다.
발표된 5개원칙이라는 것을 보면 우선 외래어와 외국어의 개념규정부터가 모호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외래어는 그 어원이 어디에 있건, 그것이 여러 나라를 경유하여 토착화 하는 과정에서 원어의 형태나 발음과는 관계없이 각각 토착어로서의 독자적인 발음 및 의미를 갖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같은「트럭」(Truc­k)에서 파생된 외래어라 할지라도 화물자동차를 가리키는「추럭」과 광산·토목공사장에서 사용하는「도르꼬」(무게운반차)는 한국어로서는 엄연히구별되는 것인데, 이를 통틀어「트럭」으로 표기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 뿐더러, 설사 그러한 표기원칙이 강요된다 하여 국민이 이를 준수할리는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외국의 지명이나 인명, 고유명사 등은 이와는 엄격히 구별되는「외국어」로서 그 표기를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를 정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의의 있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른바 외래어 표기원칙으로서 발표된 이번 문교부안이 그 안에서 외래어 와 외국어를 혼동시하고, 더군다나 분명히 우리말로써 보다 정확하게 옮겨 쓸 수 있는 외국어 음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표기를 한글정자표에 따르는 24자모로만 제한키로 한다 (원칙 제1항)는 등 부자연스런 원칙을 두고 있음은 납득키 곤란하다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외래어 및 외국어 표기에 관하여 통일적인 원칙을 수립하여야 할 필요성을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그 통일을 서두르는 나머지 언어현상의 본질을 외면한 채 너무 조급한결정을 강요하려는 당국처사에 대하여서는 도저히 찬성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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