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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음주문화와 성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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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 <2013년 5월 30일자 34면>

젊은 층 상대로 무주·절주 운동 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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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교내에서 발생한 생도 음주와 성폭행 사건은 충격적이다. 육사 생도는 전통적으로 음주·흡연·혼인이 금지돼 있지만 지도교수·훈육관·고위 장교 등의 승인이 있으면 품위를 손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음주를 허용한다. 하지만 축제 기간 중 대낮에 교정에서 폭탄주가 돌고 성범죄로까지 이어진 것은 명예와 리더십을 앞세우는 육사 전통에 먹칠을 한 일이다.

 원칙적으로 금주인 육사 생도가 음주 사고를 낸 것도 문제지만 더 우려되는 점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도도한 폭음 문화다. 대학가에선 신입생들에게 오리엔테이션부터 폭탄주를 비롯한 그릇된 음주 문화를 퍼뜨리고 선후배·친구 간 만남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내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새 학년 초나 축제 기간이면 음주 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번져 가는 그릇된 술 문화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대학생 음주를 연구해 온 헨리 웨슬러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2주 동안 한자리에서 다섯 잔 이상의 음주를 한 사람’을 대학생 폭음자로 분류하는데, 이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 대학생의 약 65%가 해당한다고 한다. 이들은 폭력·이성 문제·음주운전 등 음주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큰 것으로 지적된다.

 대학이 고질적인 폭음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자율적인 무주·절주(無酒·節酒) 운동이 꼭 필요하다. 예로 가천대는 지난해 총학생회 주관으로 ‘캠퍼스 내 금주·금연’을 선언했으며, 올해부터는 학칙으로 강의실·학생회실·동아리방 등에서의 음주와 교내 술 반입을 금지했다. 서울대·동국대 등은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술 없이 진행했고, 연세대 원주캠퍼스는 이미 2009년부터 이를 실천 중이다. 대학들은 이런 자정 활동에 적극 동참해 젊은이들이 절주 문화를 익히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보건·교육 당국은 관련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대학가와 젊은 층에서 절주 문화가 널리 퍼져나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한겨레<2013년 5월 30일자 35면>

육사 안마당까지 번진 군대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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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교내에서 대낮에 남자 생도가 여자 생도를 성폭행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번 육사 성폭행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성폭행이 외부가 아닌 교내에서 음주를 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축제 기간인 22일 오전 운동회를 마친 같은 과 생도 20여 명이 전공 교수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맥주와 소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신 상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2학년 여생도가 생활관으로 옮겨지자, 이를 돌보겠다고 따라간 4학년 남자 생도가 이 생도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간 뒤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보를 받은 일부 방송사가 육군과 육사 쪽에 사실 확인 요구를 할 때까지 사건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군은 무려 사건 발생 이후 엿새 동안이나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어느 것 하나 명예와 규율, 사명과 책임을 앞세우는 육사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이다. 군은 발생부터 은폐까지 이번 사건의 전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육군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어제야 뒤늦게 보도자료를 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관생도들에 대한 인성 교육 및 관련 규정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처럼 대통령까지 나서 군대 내 성범죄의 근절을 외치지는 않더라도 종이 한 장으로 때우는 건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다. 대책의 범위를 육사에만 한정하는 것도 표피적이다.

 군은 이번 일을 단순한 우발적 일탈 행위로 보고 싶겠지만 그런 식의 인식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군대 안의 성범죄가 가장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사관학교에서까지 발생할 정도로 만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져도 될까 말까다. 1989년 여군 병과가 해체되면서 7개 병과에 여군이 생기고, 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모든 사관학교에 순차적으로 여생도의 입학이 허용되는 등 군은 이미 ‘남자들만의 세상’이 아니게 됐다. 군도 구조적으로 성범죄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육해공 모든 부대에서 술 시중 강요에서부터 성폭행까지 여군을 상대로 한 여러 유형의 성범죄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군은 그때마다 빙산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우려 하기보다는 빙산의 윗부분을 가리는 데만 힘을 쏟았다. 군은 군대 안의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구조적 노력 없이 이런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논리 vs 논리
육사 성폭행, 폭음 문화 탓인가 군의 구조적 문제인가

한국 사회가 성추행·성폭력 등 각종 성범죄로 흔들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엽기적인 성범죄 사건이 언론을 뒤덮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성범죄에 성역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성범죄는 ‘한밤중 인적이 드문 골목길’처럼 소위 ‘그럴 법한’ 일부 장소나 상황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최근의 성범죄는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공간과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가정이란 사회가 아무리 각박하고 메말라 가더라도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가치가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보루 같은 곳이 아닌가. 종교단체는 또 어떤가. 욕망이 침범할 수 없는 금단의 성역과 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죄질과 관계없이 사회를 경악에 빠뜨린다.

 얼마 전에는 급기야 명예와 규율의 상징인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대낮에 성폭행 사건이 터졌다. 육사 축제 기간에 잔디밭에서 생도 수십 명이 담당 교수와 함께 술을 마시던 게 발단이 됐다. 술을 이기지 못한 여생도를 4학년 남자 생도가 기숙사에 데려다주다 자기 방으로 데려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중앙, 그릇된 술 문화 개선과 젊은층 자성 요구

이 사건에 대해 양사의 사설 모두 음주와 성범죄의 연관성을 꼬집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는 인식에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중앙일보는 이 사건의 본질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그릇된 음주 문화에서 찾았다. 젊은이의 술 문화에 대한 개선과 자성을 강한 어조로 요구했다. 한겨레는 군 기강 해이와 군 조직의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일보의 사설은 그릇된 음주 문화가 성범죄로 이어지는 일정한 단계화에 주목했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한 진단도 폭탄주를 돌리는 등 무절제한 폭음 문화로부터 시작됐음을 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어서 육군사관학교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젊은이 전체에 만연해 있는 무절제한 음주 문화를 꼬집고, 해결책으로 ‘자율적인 무주·절주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철저히 젊은 층의 음주 문화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사건의 주요 배경인 육군사관학교나 군의 조직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한겨레, 육사 상징성 주목 … 전군 차원 대책 강조

반면 한겨레는 이번 사건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음주·성폭행 사건과 차별화했다. 군 교육기관인 육군사관학교라는 매우 특수한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상징성에 주목한 것이다. 사건 은폐에만 급급했던 군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 그동안 발생했던 군대 내 성범죄 사건들과 함께 이번 사건도 군의 구조적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범죄 발생에 취약한 현 육·해·공 모든 부대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며 ‘군대 내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구조적 노력 없이는 재발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사건은 사건에 가담한 당사자와 이를 배태시킨 조직이 연루돼 있다. 이 둘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파악하고 문제를 분석하느냐에 따라 해결책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직접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 즉 젊은 생도이자 대학교 4학년 학생이 있고 사건이 발생한 군대라는 조직이 있다. 이 두 원인군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춰 문제 발생의 책임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과 결론이 달라진다.

중앙일보는 사건 당사자인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한겨레는 이들이 속한 조직인 군대가 잘못된 환경을 조성했음을 밝혀내려 했다. 그래서 중앙일보 사설에서는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음주 문화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 지침까지 제시했다. 반면 한겨레는 그동안 발생했던 군대 내 성범죄 사건을 예로 들며 성범죄 발생이 용이한 ‘군대 내 조직의 구조적 개선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함을 언급한 것이다. 같은 사건이지만 그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느냐, 사회 시스템에서 찾느냐가 이토록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양 사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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